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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됐으니 다르게 사고하세요

by 밀과참

목차를 짜며 생각했던 원래 제목은 <교수님은 제가 알던 어른과 달라요>이다. 그런데 어감이 영.... 잘못 보면 샤바샤바하는 느낌이라 찝찝한 감이 들었다. 대신 해당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제목을 고쳐 보았다. 교수자도 어른이란 집단에 속해 있으며, 내 불신이 가리켜야 할 곳은 개개인의 어른이 아니라 사회임을 지금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1학년 2학기가 됐다. 계속해서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될 거라는 공지가 수강신청 전부터 떠서 휴학생 대신 재학생으로 남길 택했다. 1학기 때 그랬던 것처럼 긴 자유 시간을 누리리란 기대에서였는데.... 어쩔 때는 실시간 줌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제한적인 자유를 누렸다.


S 교수님의 회화 수업은 하루는 줌, 하루는 녹강이었다. 교수님은 한국인이시나 타국에서 나고 자라셔서 원어민 격으로 계신 분이셨다. 이번에 처음 뵙는 건데, 학교에 나가 사람들과 만나는 게 아니니 교수님이든 수업이든 관련 정보를 듣지 못했다. 소수과라 에타평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OT를 듣고 딱 든 생각은 '큰일 났네....'였다. 어문학과엔 '어'말고 '문'을 내세우며 들어왔고 1학년 때는 기초만 배운 터라 할 줄 아는 거라곤 인사, 수량, 지시, 형용사 표현 정도였다. 이 수업 또한 1학년 대상인 건 마찬가지였는데 교수님께선 첫 시간에는 자기소개를 외국어로 시킬 거라 예고하셨다.

막상 자기소개에만 그치지도 않았다. A 학생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말하면,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최근에 본 드라마는 무엇인지 대화를 이어나가셨다. 문제는 이러한 문답도 외국어로 주고받아야 된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은 떠듬떠듬 한국어를 섞어가며 답했다. 아쉽게도 내 자기소개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이후 수업은 곧장 시작되는 법이 없었다. 잠깐의 사담을 갖고 몇 쪽을 펼치라 하셨는데 이 사담이라는 게 학생들에게는 러시안룰렛과도 같았다. 보통은 서너 명의 학생에게 랜덤 질문을 던지셨다. 질문은 한국어일 때도, 외국어일 때도 있었으나 대답은 최대한 외국어로 하는 게 원칙이었다.

지난 시간을 복습하는 차원도 아니었다. "주말에 무얼 했나" 정도는 가벼운 질문이었다. "최근에 본 뉴스가 있으면 말해 보아라" 이 질문은 죽음이었다.

운이 원래도 좋지 않은 편이라 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이 질문에 딱 걸리고 말았다.


"최근에 어떤 뉴스를 보았는지 말해 봐라."

"음주 운전 차량에 미화원분이 치여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여기까진 파파고의 도움을 받았다. 수업 시작 전에 번역해 둔 건데, 파파고가 매끄럽게 해주질 않았는지 교수님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셨다.)

"그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생각이야 많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외국어로 표현하기에 말하고픈 어떠한 단어도 알지 못했다. 요일도 헷갈려하는 애가 음주운전 단속,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비극의 반복, 법과 인식의 개선 같은 말을 어찌하겠는가.

교수님은 학생이 대답 못 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는 분이셨다. 어떻게든 대답하게끔 그 정적을 기다리셨다. 내가 짱구를 굴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업 분위기는 점점 싸해지는 거였다.

"슬펐습니다."

간신히 쥐어짜 낸 대답이었다. 교수님은 더 말해 보라 요구하셨지만 '슬프다' 외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교수님은 긴 지적을 던지셨다. 대학생이 됐으면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다르게 사고하도록 노력하라는 게 지적의 요지였다. 이 말씀은 한국어로 해주셔서 제대로 알아들었다. 모국어라면 편히 할 수 있을 대답을, 외국어가 부족해 말문이 막혔을 뿐인데 그걸 빼고 지적하신 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그저 부끄러웠다. 교수님의 지적과 부끄러움의 자각, 이 두 가지는 <대학생으로서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해당 학과에 들어선 이상 돌아서는 방법은 자퇴뿐이었다. 자퇴하지 않는다면 나는 OO대 OO학과 학생으로 남을 뿐이었다. 이는 내 <현재 정의>나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가기 싫었다는 과거는, 이 학교에 남아 있는 걸 택한 이상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자퇴만 안 한다면 학교를 어찌 다니든 대졸이라는 '결과'는 자연히 쥘 수 있었다. 하나 입시의 악몽으로 그저 다니기만 한다면, 결과만을 추구하던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의 뜻에 따라 대학을 진학했다 하더라도 '과정'을 달리 일구면 될 일이었다.

과정은 현재이니 과거와는 별개로 보아야 했는데 투정이 길어 바로 깨닫지 못했다. 교수님은 <대학생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지적해 주셨고 <현재 대학생인 나>는 그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게 과정, 달리 말해 현재를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니까.


1학년 2학기를 거치며 외국어 실력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교수님과의 그 부끄러운 대화가 좀 더 나은 대화를 전공어로 나눠 보고 싶다는 일념을 갖게 만들었다. 교수님께선 내게 '사고'하라 하셨다.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선 사고한 후 나의 사고를 외국어로 표현할 수 있게 단어를 찾고 문장 수정을 반복했다. 줌 수업이 돌아오기 전까지 단어를 조합하고 문장을 읊조리며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 교수님과의 문답에서 연습한 걸 적용해 보며 닦아나갔다.




한 번은, 교재에 "노래를 잘 부르시나요?"같은 문장이 나왔다. (그만큼 교재는 1학년 눈높이에 맞춰 쉬운 편이었는데 교수님의 수업은 결코 쉬울 수 없었다.) 교수님은 날 호명하시더니 "아는 외국 노래(전공어)가 있으면 말해 보아라" 하셨다. 이틀 전에 올린, 14곡을 연달아 열창했다는 글이 무색하게 당시에는 외국 노래를 아예 듣고 있지 않아 또 한 번 정적이 길어졌다. 제2외국어 시간에 배웠던, 기억 속 저편에 있는 노래를 끄집어 말씀드렸더니 "한 소절 불러 보아라" 하셨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곤 그냥 넘어가 주셨다.


나 또한 가사가 궁금해져 휴대폰으로 찾아보니 곡명이 수업에서 말한 것과 달랐다. 수업이 끝나고도 내가 남아 있자, 교수님께선 질문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찾아보니 노래명이 □가 아니라 ♡였습니다"라고 외국어로 말씀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굳이 왜 했는지 모르겠는데, 교수님과 동기가 빵 터져 나도 웃고 말았다.

다시 "한 소절 불러 보아라" 하셨는데 또 우물쭈물거리니 "그럼 노랫말을 읽어 보아라" 하셨다. 이때도 정적으로 굴었는지 아니면 몇 소절 따라 읽었는지는 기억이 애매하게 남아 있어 모르겠다.


교수님에게 '과거의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님이 대하는 건 현재의 나였다. 입학 전까지는 과거가 중요했을지 몰라도, 진학 이후 대학이란 공간에서 나의 과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교수님의 단호한 지적은, 입시 때의 고생을 떠올리며 대학을 편히 다니려던 나를 확 일깨워 줬다. 그 후로 학점을 다 채운 현시점까지 매 학기 최선을 다했다. 성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정을 결과보다 더 높이 두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줌 수업 들을 동안, 홀로 가을 햇볕을 만끽하던 멍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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