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새내기 배움터, 새 학기 MT가 모조리 취소된 채, 개강조차 지연되며 늦게 맞이한 첫 학기. 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학기에도 코로나로 인해 대학 생활은 비대면으로 이어졌다. 학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 <수업은 비대면+시험은 웬만해선 대면+학점 인플레 X>로 진행됐다.
비대면 생활을 누구보다 즐기면서도 말로는 얼른 만나고 싶다며 입바른 소리 할 때가 있었다.... ^^ 원체 내향적인 성격이기도 했는데 비대면이 길어졌던 탓일까, 21년도에 들어선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외향성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줌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열 거라는 학과 공지가 떴다. 수업 때 캠은 켰어도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안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 또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질 않았다. 고로 이는 학과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울 수 있는 기회였다. 참여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1차와 2차에 연달아 참석하면서 '아는 사람들'을 늘려갔다.
레크리에이션으로 인해 얻은 추억도 컸지만, 두 문제점이 발생했다.
첫 번째로는 새로운 사람들을 본 게 오랜만이라 주체를 못 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으니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쉽게' 믿었다. 어떤 이에겐 비즈니스일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며 만날 날을 기약하기 바빴는데(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레크리에이션 이후 사적으로 처음 본 이는 한 명뿐이었다.
두 번째로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2학년 1학기가 끝나면 복수 전공을 결정할 수 있었다. 선배들은 복수 전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나 마찬가지라고, 경상대처럼 실용적인 전공을 고르라 강조했다. 전공을 살려 먹고 살 가능성은 턱없이 적으니 일찌감치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도 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의 차원이었으니 뭐라도 팁을 주는 게 감사했다. 다만 일련의 얘기를 듣고 나서의 내 심적 혼동이 문제가 된 거였다.
회의감은 전공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레크리에이션에선 학교 얘기만큼이나 얼굴 얘기도 오갔다. 줌에서는 외향 전체가 아니라 상반신만 뜨니 얼굴에 관심이 쏠린다는 걸 예상했지만 막상 당하자 자연스럽게 이겨내질 못했다. 갑자기 몰아치는 '얼평'은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얼굴만큼 중요시 여기는 게 없으니 미성년자 시절에도 익히 당해왔다. 하나 비대면으로 접한 얼평은, 내 모난 체형을 고려 않은 채 이목구비만 갖고 말하니 이전과의 얼평과 차이가 있었다.
따지자면 칭찬의 말들이었다. 이처럼 이목구비는 관점에 따라 다를지 몰라도 키가 평균보다 크게 작은 데다 살집이 있는 체형이라 외관상 미(美)를 논할 수준은 안 됐다. 내 몸이니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미성년자 시절에는 키가 왜 이렇게 작냐, 이 정도면 초딩 아니냐 같은 농담부터 얼굴이 크다, 종아리가 두껍다, 눈코입만 보면 괜찮다, 가만히 보면 은근 뚱뚱하다 같은 말도 들었다. 긍정과 부정을 함께 들으니 오히려 괜찮았다. 세상에 외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과든, 얼굴이든 회의감이란 게 대학생활을 보내는 과정에 있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지금은 안다. 다만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안 나가고, 익숙한 고등 동창들만 만나느라 <새로운 자리에서 겪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고려하질 못했다. 20년도엔 학과 행사가 없었으니 21년도에, 1학년도 아니고 2학년이 돼서야 직격탄으로 맞은 거였다. 첫 번째 회의감은 내가 알아서 하리란 마인드로 극복해 냈으나 두 번째 회의감은 내가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좀 오래갔다.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 못한 채 대면 생활이 시작됐다. 학과 사람들이 내 실물을 뭐라 생각했을지, 관심이 있기는 했을지 잘 모르겠다. 캠에서의 얼굴은 실물과 똑같을 수 없는 데다 나는 특이하게도 캠이 더 나아서 더욱 전전긍긍한 거였다. 사람들은 대놓고 단점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없는 학생에 대해선 종종 말했다. 화장이 진한 학우를 이름이 아니라 '가부키'라 거론할 때 나는 억지로라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누구는 생긴 게 싸가지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기겁했다. 저 일부 사람들이 나한테라고 예외겠는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과 만나면 대학 생활이 더 즐거우리라는 확신은 물정 모르는 이의 지나친 희망이었다. 이후로는 나도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외적 칭찬을 건네기도 했다. 앞에서는 얼굴 얘기하며 하하 호호 웃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는 회의감을 억눌렀다.
그래도 대면으로 전환되니, 머리 스타일 바꾼 게 잘 어울린다, 패션이 어떻다, 이 색이 찰떡이다, 액세서리 어디 거냐 등 평가는 얼굴 외에 다른 데로도 분산됐다. 나 또한 이러한 말들은 즐겨했다. 내가 남들 얼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했겠지만 레크리에이션 때 당한 얼평의 파도와 일부 무례한 이들의 충격적인 발언은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도록 만들었다. 친구들이 질려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외모 한탄만 달고 살았다. (부모님은 아예 질려하셨다.)
처음으로 종강 총회에 참석했다가 집에 와서 울 정도였다. 이미 줌에서 얼굴 공개를 했으면서, 마스크 벗을 생각 하니 걱정부터 됐다. 마스크 쓴 모습만 보고도 누구 닮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줌 수업에서 본 얼굴만 갖고 친해지고 싶다 말하는 이들이 신기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헤어지기 전에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내 얼굴에만 눈길이 갔다. 거울이나 캠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이 아니라 일그러진 것처럼 보여서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이 솟구치다가도 왜 이렇게 얼굴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나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이러한 일화들이 딱히 놀랄 거리는 아니라 본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만큼 얼평이 익숙한 집단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당시에는 이를 이겨낼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 힘들었을 뿐이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춘식이도 마스크를 쓰던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