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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도 탐탁지 않아 할 줄이야

언제쯤 응원받을 수 있을까?

by 밀과참

1학년 1학기에 들은 두 교양은 국문학과 개설 강의들이었다. 과제며 시험은 전부 글쓰기로 행해졌다. 배우는 주제에 맞춰 매주 한 페이지의 글을 써야 하는 전공 수업도 있었다. 끝내 도망쳐버렸지만, 호기롭게 도전했던 철학 교양에선 <철학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무려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OT주에 말이다! 인문대는 미친 듯이 글을 요구한다는, 새내기 인문학도로서의 첫 깨달음을 얻곤 매일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시기엔 서평단 활동을 통해 블로그를 가꾸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생활기록부 독서란에 책을 기재하기 위해선 '독서기록종합시스템'이란 사이트에 독후감을 올려야 했다. 그 때문에 책을 다 읽으면 짧게나마 글을 쓰는 습관이 길들여져 있었다. 비록 서평은 독후감과 다르며 책을 제공받아 쓰는 만큼 양심껏 몇 배의 분량을 써야 됐지만 자유시간을 온전히 할애할 정도로 재밌었다.


그러다 대학생으로서 첫 방학을 누렸다. 초중고와 학기는 똑같이 시작하면서 방학은 두 배 가까이 된다니! 대학생활 시작하고 순도 100으로 기쁜 순간이었다. 달디 단 방학 동안 무얼 했는고 하면.... 공모전에 도전했다. 글쓰기를 요구하던 수업들은 종강을 맞이했고, 서평단 활동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글 쓰는 걸 멈추고 싶지는 않았기에 방학 내에 도전할 수 있는 공모전들을 수집해 가면서 글쓰기를 지속했다.


열정은 이리 과하면서 부끄럽게도 초심자로서의 자세는 지니지 못했다. 과제를 제출하며 교수님들께 들은 칭찬과 우수 서평으로 발탁된 소식들은 내 어깨에 뽕을 덧대고 말았다. 남들 눈에는 그 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모른 채 어깨를 과하게 흔들며 글을 '써재꼈으니' 결과물이 잘 나올 리도 없었다. 자신감 만만으로 지원했던 대여섯 개의 공모전에서 모조리 떨어지자 뺨 말고 뇌까지 새빨개지는 기분이었다. 결과 발표가 다 난 후, 제출했던 글을 다시 읽어봤더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 글은 나에게만 재밌다>는 글쓰기 1원칙을 깨달으며 <나대기 전에 연습부터>란 마음으로 물러섰다.




1학년 2학기엔 처음으로 리포트란 걸 제출했고, 학생 전원이 공통으로 들어야 하는 글쓰기 수업도 이수했다. 다른 교양 수업들에서도 글쓰기 과제가 빠지지 않았다. 2학년 1학기에는 영화를 감상하고 글 쓰는 전공 수업 하나와, 예습한 내용을 토대로 글을 써야 하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인문학도는 글쓰기와 멀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물론 과제할 때만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언젠가 나댈 날을 기다리며 글 쓰는 연습을 지속했는데 1년이 지나니 슬슬, 다시금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이맘때에 휴학을 신청했다. 글 쓰고 싶다는 욕망 때문은 아니었다. 글 쓰겠다는 마음 하나로 휴학할 만큼 강단 있지는 못했다. 다른 이유로 시간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매 학기 즐거움과 힘듦이 공존했지만 이번 학기는 힘듦이 너무 커다래서 즐거움을 아예 가려 버렸다. 이례적으로 전공 5과목을 들었는데, 전공 시험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해냈다는 마음보다도 의심부터 들었다. 무얼 위해 공부했나, 학습에 의미란 게 있었나,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하루에 16시간을 기록한 날도 있을 만큼 시험공부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전공 시험을 치를 때는 교양 시험과 달리 '만족'이랄 게 없었다. 내 마음이 텁텁하니 시험이 끝나고도 후련함을 누릴 수 없었다. A+를 받은 게 부끄러운 전공 수업들도 있었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보다도 만족스럽지 않은 답안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학기에도 졸업 전까지 전공 수업은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데 이런 자세로는 수강하고 싶지가 않아 졌다. 문제점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역시 대학은 초중고와 차원이 달랐다. 휴학(休學)이란 제도가 있어 당당히 쉼(休)을 누릴 수 있었다.




※ 다른 글에도 서술한 바 있는데 지금의 마음이 아니라 당시 어른 불신이 강했을 때의 마음입니다. 이로 인해 정신 질환이 심해졌으니 어른들의 사고가 제게 끝내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행동도 이해가 가기에 원망은 멈추었습니다. 현재는 회복 단계에 있으니 너무 네가지없이 보여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 ※


이러한 생각을 이해해 준 건 지지난 글에 서술한 교수님 한 분뿐이었다. 교수님과 부모님은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3학기를 잘 버텼다는 수고보다 태클부터 걸려는 부모님에게 나 또한 울컥 화가 치밀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따오라 해놓고선, 막판에 대학가라 말 바꿨을 때의 설움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는데. 대학 다녀보고 결정하라 할 때는 언제고 자퇴도 아닌 휴학에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님이 솔직히 말해 미웠다. 날 지지하려는 생각이 터럭만큼은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휴학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싸늘했다.


비단 부모님만이겠는가. 주변 어른들은 내 휴학에 물음표 날리기 바빴다. 평상시에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도 아니면서, 나에 대해 그리 관심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저 '휴학'이란 단어 하나에 꽂힌 걸로만 느껴졌다. 내 고민은 어른들에게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 말고 어른들에게 있어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졸업 요건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라는 핑계는 반은 통하고 반은 통하지 않았다. 학기 중에 자격증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복수 전공을 신청했는데 1학년 1학기 수업부터 들어야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한 학기 휴학하려는 거라는 핑계가 더 잘 통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칠 때는 언제고, 기어이 또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전공 고민을 하는 중에 전공 자격증을 공부하는 게 우습기도 했다. 이외에, 어른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글 쓰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몰래몰래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이 너무나 간절했다. 상을 타고나면 어른들의 평가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른들에게 나는 자퇴를 품은 중 2 때부터, 휴학을 하려는 대 2 때까지 지적하기 바쁜 인간이라는 게 수치스러웠다. 19살 때는 '남들' 다 대학 간다는 소리를 운운하다가, 휴학하려 하니 '남들' 다 학교 다닐 동안 뭘 그리 할 거냐는 식으로 말했다. 휴학 생활이 시작도 안 했는데 분명 후회하리라는 말을 던져댔다. 어른들이 말하는 '남들'과 달리 과탑을 찍었다는 성과도, 대학생활을 통해 이뤄낸 부분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른들 앞에서 그만 작아지고 싶지 않았다. 내 선택이 쓸모없어 보인다면, 쓸모 있어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분노의 휴학 생활을 보냈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휴학 통보가 있기 전의 사진. 이때만 해도 평화로웠던 부모님과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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