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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휴학 생활

by 밀과참

온갖 소리를 들으며 휴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홀로 시간을 누리지는 않았다. 때마침 엄마가 십 년 넘게 몸 담가온 직장을 관두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와 집에 있을 수 있음에 신나 했고 나도 거기에 웃음으로 회답했지만 순수하게 기뻐하지는 못했다. 죄책감이 일면서 나 자신이 참 못나 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쉼 없이 달려온 엄마는 휴식을 누릴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휴학은 내 예상과 달리 쉼(休)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달려가야 했다. 어른들에게 "그러게, 휴학해 봤자 후회한댔지?"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잘' 보내야 했다.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하루를 결코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집착은 이 시기를 기점 삼아 심해졌다. 내 손으로 첩첩산중의 할 일을 만들어냈다. 개인성을 번번이 부정당한 것에 대한 반발로 인정받으리란 욕심이 과했다.


같이 밥을 먹길 바라고, 같이 산책 가길 바라며, 때로는 나들이도 원하는 엄마의 사랑이 내게는 방해 요인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빗장을 단단히 잠그었을 때, "쉬는 동안 같이 산책하면서 엄마는 참 즐거웠는데, 너는 안 그랬니?"라는 물음을 받았다. 엄마의 진심 어린 말은 내게 비수(匕首)를 넘어서 장검(長劍)으로 다가왔다. 나는 엄마와 동일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죄스러움에 표정 관리도 못했다.




휴학 생활은 한 학기에 그쳤다. 반년도 탐탁해하지 않은 어른들이 1년을 용납할 리 없었다. 학교를 쉬기 시작한 21년도 9월부터 불과 한 달 전까지 나사가 여러 개 빠진 상태로 살았다. (현재는 잃어버린 나사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한숨부터 내쉬려는,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질릴 대로 질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학 기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전공 공부를 했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책을 읽었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썼다. 꾸준히는 아니지만 알바도 했다. 여기에 더해 다섯 달 간 진행되는 서포터즈 활동에 동기들과 참여했다. 계획서를 쓰고, 카드 뉴스를 제작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을 반복했는데 당시 재학생인 동기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내가 일을 더 하겠다고 자처하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싸움을 그칠 줄 모르는 가족들에게도 환멸이 났다.


전공의 의미를 찾고 싶었는데 내 삶의 의미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는, 눈앞에 있는 내 방 옷장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어둠을 무서워하면서도 캄캄한 옷장 안에 자발로 들어가 잠깐 동안 머물렀다. 날 꺼낸 건 가족들의 걱정이 아니었다. '아, 할 일 해야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라는 나의 채찍질이 나 자신을 옷장 밖으로 밀쳐냈다. 옷장은 많이 낡아 얼마 안 있어 버려지고 이후 내 방에는 2단 행거가 달렸다. 불과 한 달 전, 방 안에 누워 있는데 문득 '행거가 무너지면서 옷들이 내 얼굴 위로 다 떨어져 숨이 막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공을 배운 지 1년 반밖에 안 됐음에도, 졸업 전에만 따면 되는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입학 전부터 취득한 실력자들도 허다했지만 20살이 돼서야 자기소개를 할 줄 알았던 내게는 난도(難度)가 높은 결정이었다. 시험을 딱 한 번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단번에 합격하겠다는 열망으로 공부했다. 학기 중에 하루에 순공부를 16시간 기록한 적이 있었다. 그땐 과목이라도 여러 개였지, 자격증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외국어(전공)만 달달 외웠다. 시험도 치르기 전에 그대로 죽고 싶었다. 30분도 걸리지 않던 전공 시험에 회의감을 느끼며 휴학을 결정했던 나는 2시간의 외국어 시험을 치르고 와야 했다.


싫어하는 신조어 중에 '누칼협'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는 의미인데, 사용법이 틀린 거 같지는 하지만 학점을 다 채울 때까지 이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해 보였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나는 스스로 매단 추에 스스로 죽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절친한 친구가 "너는 얼마나 더 힘들어질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거 같다"는 우려를 던지기도 했다.


휴학 생활은 내게 있어선 실패였다. 자격증도 따고, 대외활동도 하고, 공모전에서 수상도 한 데다 (휴학 기간 한정은 아니지만 그해에) 책을 100권 넘게 읽었다. 처음으로 돈도 벌어봤다. 그런데 전공 학습의 의미라는 제1의 목적을 찾지 못한 이상 내겐 의미가 없었다. 어른들의 예상대로 휴학은 실패로 결말 맺어졌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참 예쁘지요? 3년째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냐옹 친구입니다. 이 사진은 복학 전날 만나서 찍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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