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여행
'고통일지라도 날 멈춰세우는 것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까.'
통도사행 버스를 기다리다, 영주에서 부석사행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의 의문이 솟아났다.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바람은 언제나 느렸다. 모두 나의 잘못이었기에 그만큼 느렸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기에 다가왔고, 기다렸기에 처음에 가질 수 없는 것도 얻게 된다. 그래서 괴롭지만 참고, 참을만하여 참이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더함이 운명이며, 나아감이 의지이고, 참음이 의지와 운명의 조화이자 중심이다. 통도사도 그랬다. 가장 먼저 가려했지만 가장 늦었고, 멀리 돌아왔지만, 더 많은 것을 보았고, 이 여행의 종착지인 통도사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다가왔다.
20241126.
대왕암 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통도사 입구인 총림산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 총림산문에서 일주문까지 거의 2킬로 가야 했다. 낙엽이 만들어놓은 붉은 융단 같은 길이 펼쳐졌지만, 몇 시간 후면 해가 질 것이기에 서둘러야 했지만, 물집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 길은 춤추는 바람을 불러들이는 시원한 소나무길이란 뜻의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이다. 하늘마저 가리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옆에는 바람이 타고 오는 청류동천이라는 계곡이 흐르니 그럴 만도 했다. 계곡 쪽 길가에 불자들이 봉헌한, 수십 개의 석등이 지키고 있었는데, 통도사의 위상을 알만했다.
통도사 천왕문이 보이는 청류교 근처에 다다르면 바위에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불전에 모시지 못한 가난한 민초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는 일종의 방명록인 셈이다. 이도 알고 보면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에 그 영험함을 받으려 하는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통도사通度寺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자장慈藏이 영축산에 계율종으로 창건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통도라는 이름은 사찰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한국 사찰의 위상으로 보면, 3대 삼보사찰이자, 5대 적멸보궁이며, 세계유산 7 산사이면서, 조계종 총림에 속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사찰이다.
삼보三寶란 불佛, 법法(경전), 승僧의 보물을 말하는데, 3대 삼보사찰은 석가의 진신사리가 있는 불보사찰 양산 영축산 통도사, 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합천 가야산 해인사,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순천 조계산 송광사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자장이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찰이나 불전을 말한다. 총림叢林이란 참선수행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특별한 전각도 많았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은 다른 어떤 사찰의 대웅전보다 독특하며 사찰의 중심인 금당 중의 금당이다. 통도사 대웅전은 위에서 보면 일자 형태의 다른 대웅전과 달리 정丁 형태이며, 하나의 현판을 단 다른 대웅전과 달리 적멸보궁(북), 대웅전(동), 금강계단(남), 대방광전(서)이라는 네 개의 편액(현판)이 달려 있다. 그 모양도 글씨의 색도 다른데, 금강계단, 대방광전,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썼으며 적멸보궁의 글씨는 구하 천보九河 天輔 스님이 썼다. 보통은 넓은 뜰을 접한 쪽에 대웅전이란 현판을 걸고 뜰의 정면에 해탈문(불이문)이 있기 마련인데, 통도사는 해탈문 방향으로 대웅전 현판을 달았다.
남쪽의 금강계단金剛戒壇 현판은 금강석 같은 계를 받는 곳이란 뜻으로 승려가 되기 위한 수계를 받는 곳이란 뜻인데, 실제로 금강계단은 대웅전 뒤편에 있는 진신사리함에 오르는 계단을 말한다. 그러니 금강계단이라는 현판은 금강계단으로 향하는 문의 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쪽의 대방광전大方廣殿 현판은 영원한 진리와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불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석가와 그 진신사리가 서쪽에서 왔기 때문에 현판을 달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은 석가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이란 뜻인데, 적멸이란 고요한 사라짐이란 뜻으로 죽음이고 불가적 해석으로는 깨달음의 경계인 열반을 의미한다. 적멸보궁 현판 앞 뜰에 세워진 금강계단의 중앙에 종처럼 봉긋 솟은 석가의 진신사리함이 있다.
예쁘게 새겨진 연꽃과 모란의 꽃살문을 통해 대웅전으로 들어가니, 천장에는 화려하고도 장엄한 금단청이 보살과 천인, 태극, 넝쿨, 국화, 연꽃, 우담바라가 수놓아져 있었다. 헌데 존귀한 존재나 인물이 앉는 자리 위에 있는 지붕인 닫집唐家이 없었다.
그 안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적멸처럼 고요하게 숨을 죽이며 앉아있었는데, 뭔가 빌며 절을 하는 이도 없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단에 촛불만이 오롯이 타오를 뿐 대웅을 상징하는 부처의 상이 없었다. 부처는 저 창 너머 진신사리함에 있기에 적멸보궁에는 부처가 없는 것이다. 통도라는 이름도 실은 통하기 위해 (무엇도 없어진) 자리, 그 자리에 부처가 없음을 뜻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 찰나, 내가 저 창 너머로 사라지는 것 같았고 뭔가 빠져나가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삼길포항의 물빛에서 보았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욕심이, 공주 금강에 비친 두 개에 환영에 빠져, 영주 부석사에 부서져 유영하다, 구미 낙동강에 허우적댔으며, 해미읍성으로 돌아왔다, 대왕암 물결에 녹아내려, 이 창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런 욕심이 없으니 부처가 있을 필요도 없고 혼자 서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탐하여 찾지 않고 스스로 아름다움이 되어야 한다. 바람은 언제나 느렸기에 고통일지라, 내가 바라지 않고 미래를 보고 너의 마음을 읽는 바람을 주는, 부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찾던 진짜 욕망의 문을 여는 열쇠일지 모른다.
2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