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내 방은 창문이 남향으로 되어있지 않아 날이 좋아도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오지 않는 방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아침부터 키는 전구는 한 두 달만 지나도 금세 불이 나가고 방은 항상 어두웠다. 10년 이상 된 벽지는 누렇게 바래 방을 둘러쌓고 있고, 자는 자리 바로 옆 벽지는 몸을 기대고 자꾸 건드리니 그 부분은 특히나 더 시켜 매져 있었다. 잠자리는 몇 년 동안 침대 없이 매트만 깔고 생활하고 있었고, 덮는 이불은 오래되어 너덜너덜 해진 곳에 잘못해 발가락이 걸려 힘을 조금만 줘도 쭉쭉 찢어지는 이불이었다. 매트리스 위 책장에는 오래된 책들과 물감이 가득 차 잘못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물건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거기다 폐업한 가게의 남은 물건들은 종이박스에 담겨 책장과 매트 옆으로 가득 쌓어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울한 마음의 내가, 칙칙하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창고 같은 방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으니 마음은 더 우울해졌다. 어느 순간 우중충하고 더러운 방이 나인지 내가 이 방인지 모를 정도로 방은 나와 하나가 된 것처럼 닮아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려고 그제야 아무리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도 한계가 있었다. 큰 변화가 없는 방을 이제 더 이상 그냥 둘 순 없었다.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돈이 꽤 들 수밖에 없는 일이라 미루고 미뤘던 일이었다. 하지만 우울함으로 인생의 엔딩까지 결심하고 난 뒤로 방 인테리어는 결심이 쉽게 섰다. 방을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깨끗하게 바꾸고, 침대를 사고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셀프 인테리어는 하는 동안 힘은 정말 많이 들었다. 왜 세상에 인테리어 회사가 존재하고, 그 사람들이 왜 먹고살 수 있는지는 셀프 인테리어를 해본 사람만이 안다. 돈이 최고라는 걸 다시 느꼈다. 혼자 셀프로 작업을 시작하면 인터넷에서 인테리어의 비포, 애프터 한 장의 사진처럼 순식간에 뾰로롱 마법을 부린 것처럼 누가 내 방을 바꿔주지 않는다. 가구나 제품은 온오프라인 가격비교도 해봐야 하고, 설치 방법도 알아보고 배송기사님과 연락, 설치 시간을 잡아야 한다. 페인팅 용품을 사고 나면 우선 가구 안에 물건을 빼고, 가구를 밖으로 옮겨야 한다. 묻지 않아야 하는 곳에 마스킹 테이프까지 꼼꼼히 붙여줘야 드디어 페인트 칠이 시작된다. 페인트는 얇게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를 완전한 색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벽이 완성되면 빼낸 짐에서 버릴 것들은 처분하고 남은 짐과 가구는 힘을 주어 다시 들고 옮기고 정리하고.. 끝날 때 즘엔 몸살이 났다. (게다가 작년 2018년 기록적 폭염 속에서 진행한 거라 더 힘들었다.)
하지만 셀프 인테리어는 잘만 완성을 시키면, 그 뒤부터는 그 공간을 사용하면서 만족감은 점점 쌓여간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얻은 점이 많다. 아무도 없는 날을 잡아 시작한 작업이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작업을 하니 한 번 시작한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면 힘들어도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무기력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던 내가 하루 종일 사부작 거릴 수밖에 없었고, 매트리스를 뺏으니 힘들다고 중간에 푹 퍼져 누울 수도 없다.
땀을 줄줄 흘리며 의자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팔을 계속 움직이는 움직임을 통해 '단순 반복 노동'으로 느끼는 활력을 느꼈다.
이것도 뇌에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서 일까? 힘은 정말 많이 들지만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서 이상하게 안정감과 건강함을 느꼈다. 하나하나 바꿔가며 달라진 내 방 모습에 성취감도 느꼈고,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아 예전과는 다른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포인트 1. 벽을 페인트로 칠했다.
매트리스 옆 벽은 너무나 더러워져있었다. 도배보다는 페인트가 싸길래 벽지 위에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근처 마트에서 2리터 정도의 작은 벽지용 페인트와 롤러를 샀다. 매트리스와 책장을 들어내면서 가구 안과 가구가 있던 자리에 먼지와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페인트 칠을 시작했다. 한 번만 바르니 너무 얼룩이 져서 더 지저분해 보였는데 좀 말랐다 싶을 때 또 칠하고, 마르면 한 번 더 칠했더니 그제야 깨끗한 흰색이 올라왔다. 두 쪽 벽면만 칠하는데 한나절이 걸렸지만 (반대쪽 벽면은 혼자 옮기기엔 무거운 가구가 많아하지 않았다.) 벽만 깨끗해졌는데도 방 전체가 밝고 깔끔한 느낌이 났다.
포인트 2. 가구 배치를 바꾸고 수납을 늘렸다.
벽을 칠한 김에 매트 위 머리맡을 차지하던 책장을 반대 벽으로 옮기고 오래된 매트는 버리고 수납 가능한 침대를 구매했다. 가게 하다 남은 자제들 중 깨끗한 물건만 정리해 침대 아래 안쪽 수납장에 모두 넣어주었다. 밖에 나와있는 큰 짐들이 정리가 되자 방을 훨씬 깔끔하고 넓어 보였다. 그리고 집에서 입는 옷과 속옷은 바깥쪽 서랍장에 넣어 그때그때마다 자주 갈아입을 수 있게 했다.
포인트 3. 침구를 흰색으로 바꿔주었다.
오래전부터 썼던 보기 싫은 찢어지고 촌스런 무늬의 이불은 이제 안녕, 다 헐고 우중충한 무늬의 이불은 버리고 전체가 다 흰색인 여름 침구류를 구매해 바꿔주었다. 깨끗한 침대와 메트, 그리고 그 위에 하얀 이불과 베개까지 항상 청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줬다. 생리를 할 땐, 빨간색 담요를 깔고 자면 더 관리가 편하다. 이젠 먼지나 땀이 좀만 쌓여도 흰색 이불에서는 얼룩으로 바로 티가 난다.
포인트 4. 물건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가리고, 덮어주었다.
책장에 계속 쌓이는 먼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있던 흰 천을 자르고 재봉해서 천 끝에 압정을 꽃아 책장 앞을 덮어주었다. 먼지도 쌓이지 않고, 지저분하게 보이던 책과 잡기들이 가려지니 훨씬 방이 깔끔해졌다. 다이소에 산 통으로 가게 재고와 내 자질 구래 한 물건을 구분해 넣어 먼지가 쌓이는 걸 방지해주었다.
포인트 5. 전등은 LED 등으로 바꿔 항상 밝은 방으로 유지했다.
금방 어두워지고 자주 갈아주어야 했던 일반 전구 등을 LED 등으로 교체했다. 설치도 어렵지 않았고 한 번 사면 등을 갈 일이 없이 항상 짱짱한 밝은 빛을 내줘서 처음에 살 때는 지출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이익인 것 같다. 그리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불을 켜도 항상 어두웠던 방이 선명하고 환하게 밝아지니 눈이 밝아지면서 사물이 또렷하게 보였고 불 밝기만 달라졌는데도 기분도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페인트: 롯데마트에서 2~3l짜리 2만 5천 원 정도에 구입
(매장마다, 페인트 성분이나 용량에 따라 가격차 있음)
-롤러: 2천 원
-트레이: 2천 원 정도에 구입.
-원목 수납 침대: 동네 가구점에서 매트 포함 40만 원대 구입
-여름 침구: 이불+베개커버 1장 세트 3만 원
-천: 집에 남는 천 사용. (천은 천 사이트에서도 구입 가능)
-정리할 때 사용한 통: 다이소 2,3천 원
-LED 등: 리모컨 포함 5만 원대 (리모컨이 포함 안된 건 3만 원 선)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제에서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다른 방법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