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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Oct 15. 2019

백수지만 스케줄은 짜고 싶어.

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 생각이 없다. 바라던 어제가 아니었고, 바라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눈 뜬 오늘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밀려 받게 된 처지 곤란한 쓸모없는 물건 같았다.


 주어신 오늘이 감당이 안돼 침대에서 몸이 찌뿌둥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겨우 일어나 습관적인 폭식을 하고 인터넷 공간을 할 일 없이 떠돌다 보면 다시 또 졸음이 몰려온다. 무기력한 생활의 초창기, 정말 내가 생각해도 하루 종일 하는 게 없었다. 하루 종일 놀고 있으니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급한 용무가 생기면 어디 누구랑 놀러 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그냥 있는 나는 시켜먹기 딱 좋은 아주 유용한 심부름꾼이다. 은행업무, 아파트 일, 택배, 식사 준비, 청소, 빨래 자잘한 잡일은 다 나한테 시키는데 분명 다들 바쁘고 급한 일이라 시키는 건 알겠지만 이상하게 대신 처리해주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저 마음 깊숙한 부분에서는 스멀스멀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들 일을 너무 나한테 시키는 거 아니야? ', '내가 항상 집에서 놀고만 있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당연한다는 듯이 쉽고 편하게 부려먹지?!'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하다고 생각하니 그런 부탁과 심부름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고, 무기력하고 모든 게 귀찮았던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니 힘들어 짜증이 났다.   

  

참나, 나.. 나도!! 스케줄 있는 사람이다~이 말이야!
이럴 때면 할 일 없는 백수지만 스케줄은 짜고 싶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나도 이 무기력과 우울에 발버둥 쳐오며 나름 소소하고 가볍지만 할 거리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 루틴을 하고, 몸의 청결에 신경 쓰게 됐고, 더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려 노력했고 줌바댄스도 시작했다. 뒤죽박죽 기분 내키는 대로 해왔던 일들을 탁상 달력에 스케줄로 표시해본다. 그래도 딱히 할 일이 없다면 내 할 일 내가 만들어 봤다. 작은 화분을 만들어 관리하고 물을 주거나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과일로 과일 청을 만들 봤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흔한 일들은 전 날 미리 생각하고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뒤 다음날 진짜로 하면, 그것 나름대로 나만의 스케줄로 인정해줬다.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쳐댔지만 생각을 실행에 옮기고 죽고만 싶었던 내가 미래를 계획하고 '살 내일'을 생각하는 게 스스로 너무 멋지고 대견했다.


스케줄 짤 때 써먹었던(?) 할 일 거리들


<소소하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

-인테리어 하고 청소하기

-가족들과 다 같이 먹을 반찬 만들기: 가족들에게 생색 좀 낼 수 있는 기회.

-오늘 쓴 돈 기록하기: 없는 살림이라 소비를 기록해보고 줄일 품목은 줄여가기.

-산책하기(전편에 나온 마이크로 어드벤처 떠나기)


<어렵진 않지만 배울만한 것들 배워보기>

-단기 수업, 원데이 클래스: 커피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자세 교정, 드로잉 수업, 창업 세미나

-문화센터 혼자 하는 수업 등록하기: 프랑스 자수, 요가, 벨리댄스, 줌바댄스

-유튜브 보며 기초 영어 공부하기


<집에서 아날로그 취미로 마음에 여유 찾기>

-좋은 책 필사하기, 글씨 예쁘게 쓰는 연습하기 : 벌렁벌렁거리는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됐다.

-유튜브로 프랑스 자수 배우기

 


 달력에 짧게라도 한 달 동안 주기적으로 나가는 스케줄을 1,2개 정도 잡고, 하루 짧게 나갔다 오는 이벤트성 스케줄도 2~4개 정도 잡아본다. 소소한 일거리들은 미리 달력에 세세히 적어 마음에 부담감을 주지 않았고, 일을 실제로 실천한 그 날에 달력에 표시하고 기록했다.

 

 할 일 거리들은 그 전날 자기 전에 생각하고 자면, 다음날 일어나서 멍하니 누워있을 때 느꼈던 공허함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침 루틴을 마친 하루의 시작에 이어서 할 ‘할 일’이 생기니 오늘의 삶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로만 짜인 백수의 스케줄을 슬슬 즐겨보기 시작했다.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제에서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다른 방법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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