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는 왜 우울하고 무기력한 집순이가 되었을까?
가게를 정리하고 나니 번 게 없었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없는 형편이었다. 들어왔다 나갔다 한 금액은 많았던 것 같은데 남아있는 게 없었다. 2년 동안 월세만 갖다 바쳤구나…
시간이 텅 비워지고 할 일이 없어지자 뭐라도 해보려고 빈 시간에 개인과외를 하면서 용돈벌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에 그 과외 하나 나가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약속을 하고 돈을 받았으니 약속한 요일에는 알람을 몇 개를 맞춰 힘겹게 일어나 온 정신을 집중해 겨우 수업을 하고 오면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가방을 내팽개치고 누워 자기 바빴던 것 같다.
그렇게 그냥저냥 피곤하고 조금씩 아프고 낫기를 반복하며 과외를 하다 어느새 봄이 되었고 내 무기력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무기력한데 용돌 벌이라도 해야 하고 생활은 해야 하니 억지로 움직일 때마다 배 쪽이 따끔거렸고 옷에 쓸릴 때마다 콕콕거려 신경이 쓰였다. 그게 나는 옷에 까끌한 것 때문에 스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거나 몸이 건조해서라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목욕을 하고 잔뜩 로션만 발랐었다.
어느 날은 배는 괜찮은데 가슴 쪽이 간지러워 나도 모르게 북북 긁었다. 그런데 그 긁은 붉은 얼룩이 사라지지 않고 크게 옆으로 번져나갔다.
그제야 병원에 가니 이게 대상포진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에 잠복하다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보통 젊은 사람들은 드물게, 대게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60세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생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이 나이에 대상포진이라니..? 처음엔 얼떨떨했다. 그래서 병원을 두 군대를 가보고 나서야 대상포진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았다. 옷 한쪽을 벗어 가슴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이다 치료실에서 가슴 한쪽을 드러낸 채로 레이저를 쐰 채로 멍하니 천장을 보며 치료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천장을 보며 느낀 감정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슴을 내보여 창피한 것보다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있는지 모르겠어서였다. 나는 그때의 나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에게 약 먹고 레이저 치료를 하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푹 쉬라고 하셨다.
네? 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백순데요?
진짜 놀고먹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쉬면.... 더 이상 어떻게 쉬라는 걸까?
대상포진으로 드는 병원비는 만만치 않았다. 피부과 레이저 치료는 비싸서 몇 번가다가 말고 약을 처방만 해주는 내과병원으로 옮겼다. 대상포진은 처음에 잘 치료하지 않으면 피곤할 때마다 또 올라온다고 한다. 그래서 드는 돈도 아깝고 재발도 무서우니 어떻게든 빨리 나으려고 진짜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내가 그렇게 쉴 수 있었던 게 일을 다니지 않는 백수였기 때문이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아니면 일을 다니지 않은 후부터 아팠으니 백수가 되었기 때문에 아픈 걸까?
다들 누군가와 즐기러 밖으로 나갔던 꽃 피는 봄날.
나는 혼자 누워 집에 시간 개념, 날씨 개념 모두 사라진 채 '그냥' 있었다. 숨만 쉬고, 밥만 먹고, 잠만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