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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Aug 20. 2020

삶이란 버스 위에서

우린 모두 중심을 잡는 중이야.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있다. 아침마다 차려주는 엄마의 밥상이 당연했고, 학비를 주는 아빠의 지원이 당연했고, 하루쯤은 밤새 놀고 아침에 들어와 다음날 몇 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멀쩡 해지는 내 체력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저 오랜 시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몇 년 전 집에 있던 엄마가 일을 나가면서, 당시 프리랜서였던 내가 1년 정도 아빠의 식사를 챙겨주게 됐는데 매 끼니마다 밥, 국, 반찬을 준비하는 게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먹기만 하는 사람은 그 고생을 모른다. 매일매일 다음날 뭘 차릴지 고민하고, 아빠 퇴근시간 전에 미리 집에 가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시간적 제한이 생겨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제야 평생 매 끼니를 챙겼던 엄마가 가끔 내가 차린 밥상을 왜 그리 좋아라 했는지 이해가 갔다. 밥은 자고로 남이 차려준 밥상이 제일 맛있다.


자영업에 뛰어들고 부과되는 각종 지출을 감당하고 매달 월세를 내고 다음 달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더 돈을 벌지 할지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 보니 어린 나이에 홀로 올라와 기술 없이 몸뚱이 하나로 지금까지 가족들을 부양한 아빠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누워 뻗어버리는 요즘, 밤새 놀아도 팔팔했던 몸뚱이를 그리워하며 아, 세상에 영원하고 당연한 것은 없구나, 깨닫는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해준 부모님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어찌 되었건 부모 밑에 살고 있는 시간만큼 그 시간 모두가 돈이고, 이익이다.


어렸을 때는 세상 모든 게 만만해 보였다. 초등학생 때는 누구나 당연히 서울대, 연고대에 가는 거라 생각했고, 중학생 때는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전문직이나 멋진 예술가가 되어 낭만적인 인생을 살거라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생이 되면 저절로 살이 빠지고 30살 전에는 결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 듯, 앞서 이야기한 것 중 한 가지라도 실현한 사람이 있으면 정말 축하를 받아 마땅할 만큼 내가 생각한 미래에 대한 상상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중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지금 내 삶이 힘든 건 힘들지 않았던 그 전의 상태가 내 ‘기본 상태’였던 게 아니라, 단지 내가 인지 못한 어떤 혜택으로 그동안 힘들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지금 이 삶 위에 한 사람 몫으로 두 발로 버텨 서 있으려는 내가 힘든 건 당연 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제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불규칙한 반동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흔들리며 가고 있는 인생이란 버스에 나는 지금 두 다리와 두 팔의 힘으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며 살아내는 중이다. 계속 흔들리고 있기에 계속 균형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 체 당연하게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내가 대견하다. 몸속 깊숙한 곳에는 나도 모르게 적절히 힘을 분배하는 균형감각과 버틸 수 있는 끈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지쳐있는 나를 다독여 주고 싶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우연히도 앉을자리가 생길지도, 아니면 지치고 힘든 마음을 잊게 해 줄 창 밖의 멋진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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