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듣기만 할게요.
세상에 처음 겪는 일이나 중대한 삶의 기로를 결정을 해야 할 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경험과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는 내 꿈과 현실적 삶에 대한 고민이 그랬다.
예를 들어, 연예인 00 씨는 오랜 무명생활을 했지만 뒤늦게 연기력을 조명받아 대스타가 되었고, 지금은 무명생활보다 더 긴 시간을 스타로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무명생활을 하다 아예 연예계를 나와 전혀 지금까지와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하며 오히려 연예게 생활을 할 때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도 한다.
이런저런 삶의 성공 사례들을 보면 양쪽의 선택에서 잘 된 경우도, 망한 경우도 있어 어떤 선택이 나에게 맞는 건지 헷갈린다. 누군가는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지금 잘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하고, 누구는 할 때까지 해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듣다가 또 누구는 꿈을 잃지 말라고 한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결정에 따라 앞으로의 내 인생도 다른 방향으로 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결정을 하기 전에 고민만 수십 번 하고 결정을 망설인다. 세상에 기회는 여러 번 있다고 하지만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최대한 실패를 줄이고, 나에게 맞는 좋은 선택을 하고 싶고 위험은 줄이고 싶다. 나는 지금 어떤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까? 어떤 쪽의 말에 맞는 사람인 걸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선택에 따른 정확한 경우의 수와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게임처럼 내 인생을 여러 번 플레이해보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산지가 몇 년인데, 지금까지도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옳은 선택인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만, 불안정한 생활도 같이 따라왔다.
그리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난 어땠을까? 내 적성에 맞는 곳에 운 좋게 취직해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지금쯤은 직급도 달고 정해진 연봉도 있어 지금보다 안정적이고 착실히 저금을 해 모아둔 돈도 좀 있을 것이다. 그럼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더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잘 먹고 잘 살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반대의 경우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그런 삶을 살아도 난 그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다. 창작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게 완성되고 좋은 평까지 받을 때의 쾌감과 희열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살면서 순간순간마다 그림을 포기한 내 선택을 후회했을 것 같다. 근사한 직업에 여유로운 형편의 성공한 사람이 되어도, 멋진 그림을 그리며 활동하는 작가가 나온 어떤 매체도 보기 싫어했을 것이고, 주변 아는 작가님들과도 연락을 끊고 어떤 소식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 꿈을 잃어 아픈 마음을 가슴 한편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묻어두고 순간마다 가슴 시려했을 것 같다.
내가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던 그림을 다시 선택하며 깨달은 건, 어떤 쪽으로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맞는 성공을 위해 그 분야의 사람들과 경쟁해 그 사람들보다 더 한 노력해야 하고, 내가 그만큼의 노력을 한다고 성공이 무조건 따라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한 선택으로 놓치고 포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방향과 목표가 흔들릴 때, 각각 다른 시각과 기준에서 해주는 조언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게 아니라, 어느 한쪽의 의견일 뿐이라고 마음을 여유롭게 열어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성공한 삶의 사례는 정말 ‘사례’ 일 뿐,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서 그 사람처럼 똑같은 성공을 만들어 낼 수 없고. 내가 한 선택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제 고민과 결정의 순간이 올 때는 여러 조언과 의견을 내 안에 잘 축적해 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나중에 포기하면 가장 후회할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를 연구해본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더 잘하고 재주가 있고 뭘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내면의 소리를 먼저 듣고 더 주의 깊고, 애정 있게 들어다 보기로 했다.
정말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다른 사람 말은 듣기만 합시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 연제한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책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예스 24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