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습을 해요.
어디 보자.. 루저. 그래 루저가 딱이다!
그동안 계속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루저'다. '루저'의 뜻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루저(loser) : 말이나 행동,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 어디를 가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
예전에 스스로를 루저로 생각했다,며 과거형으로 쓰려다가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에' 대목이 아직도 뼈를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니, 아직 이 구린 마음을 다 벗어나지는 못했나 보다.
내가 나를 루저라 생각하며 자존감이 낮아진 루트를 파 해쳐 보기로 했다.
우선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준 사람에게 대응을 못했다. 맞받아칠 적절한 근거를 찾을 만큼 경험과 지식이 없었고 대응할 힘이 없으니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 편에 서서 그 사람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상처를 준 의견에 합세에 나도 나를 괴롭히는데 함께 동참했다.
이게 내가 시작한 자책과 자학이다. 그 문제의 원인과, 미워할 대상을 '나'로 정하는 게 그 상황에서는 제일 쉬운 방법이니까, 편하니까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줬다. 나는 유일하게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니까.
그렇게 자주 나를 탓하고 미워하게 되면, 그렇게 만든 문제나 상황은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 낮아진 자존감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니 문제가 없어도 혹은 문제 상황이 나아져도 항상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기가 죽어있고, 내 주장이 맞다고 주장하지 못했다. 초라한 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자존감이 낮아졌는데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한 체 또 다른 외부 문제나 공격에 맞닥뜨리면,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무조건 반사 반응'처럼 습관이 된 자책이 시작되고, 우울하고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모은다. 난 이 마음이 참 구린 거 같다.
그렇게 커진 구린 감정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판단과 눈을 왜곡시켰다. 나에 대한 내 평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인정한 사람이나, 바라는 대상이 나를 인정해 주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들이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원하는 걸 얻고, 이뤄내도 만족이 되지 않았다.
점점 다른 외부 시각과 판단이 나의 전부이고 절대적인 것처럼 사고가 굳어져만 갔다.
그런데 몇 년 전, 최악의 우울감과 무기력한 감정 빠져 그 감정에 휩쓸렸다가 발버둥 치면서 마지막에 나에게 남겨진 감정은 벗어나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단지 살기라도 하고 싶어 발버둥 쳐 벗어나고 보니, 내가 살고자 하는 내 삶에서는 내가 생각하고 신경 썼던 것들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살아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니 이제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감정에 취하듯 살 수가 없었다. 30대가 되고 '나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내가 부풀린 감정에 빠져 있는 시간도 아까웠다. 잘 살아보고 싶어 아무리 활발한 사람은 것처럼,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일 처리나 작업을 하고 싶어도 내 마음속 저 깊숙한 곳에 있는 낮은 자존감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 거다. 그래서 아무리 침대에 누워서 생각만으로는 정리가 안 되는 생각들을 적고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적고, 항목으로 나누다 보면 쓸데없이 사이사이 껴있는 지저분한 걱정이나 우울, 한탄, 과거의 기억 등의 찌꺼기들이 정리가 됐다.
"정말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과연 이게 원인일까? 이 방법뿐일까?"
"이렇게 된 게 정말 내 잘못이야?"
원인과 해결방안을 생각할 땐, 내가 습관적으로 결론짓는 원인과 해결방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스스로 자책, 자기 비하가 심했기에 생각만이라도 뻔뻔해져 봤다.
예를 들어 '취직을 단 한 번도 오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인은 '무능하고 끈기 없는 부족한 나'라고 생각했다면, 다시 한번 외부 요인은 정말 없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적어봤다. '다들 겪는 취업난' 그리고 '박봉에 노동착취가 심한 디자인계열', '직장상사의 성희롱' , '임금 지불에 대한 입장 차이', '정식 계약서 작성 안 하고 일 시킴’ 등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원인도 많았다.
정말 내가 그렇게 무능하고 끈기가 없었나? 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니 다른 몇 알바로 일한 업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했고 꾸준히 다녔던 경험이 있었다. 정식 취직 제안도 받았었다. 여러 잘했던 경험 있지만 내가 인정하지 않은 경험들을 하나 둘 꺼내보니 내가 완전 바닥까지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취직도 늦게 했고, 오래 다니지도 못한 내가 오롯이 내 잘못만은 아니다. 나는 이후 이 상황을 해결해 보려 프리랜서를 하다 프리랜서로도 불안정하니 자영업까지 겸업을 하며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로 내 삶을 보강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뚱뚱하고 못생기고 살갑지 못하다.'라는 게 항상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뚱뚱하고 못생기고 살갑지 못하다'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하찮게 여겨지고 대접을 받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과체중인 것은 표준 체중이 아니니 인정한다지만, 정말 내가 못생겼고 살갑지 못한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 판단이 모호하다. 남들 눈에, 이성에 눈에 호감을 사기 위해 억지로 내 성격과 행동을 제한하고 내 몸을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오류다.
이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 명확히 보인다. 나는 내 몸이 건강할 정도로 꾸준히 평생 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과, 근육과 힘을 키워야 하는 게 옳은 방법이라는 것을 찾았다. 그래서 요즘은 건강한 몸을 위해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다. 여자가 살갑지 못하고 애교가 없다는 잔소리는 서비스업에서 필요한 정도의 친절만 제공하고, 손님이 오고 갈 때 큰 목소리로 진심이 담긴 인사는 빼먹지 않기로 했다. 불특정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성격과 마음이 동하지 않는 억지웃음, 억지 친절, 억지 공손은 이제 그만 두기로 했다.
내 안에서 기준이 생기고 해결을 위한 방법과 계획이 잡히니 마음에 스크레치를 내려는 것들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조언과 상처를 주려는 말이 구분이 되니 더 이상 헛소리들은 나를 상처 주지 못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없다는 것을.
습관처럼 나를 미워하고 질책했던 것만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습관처럼 튀어나오게 반복해서 나를 칭찬하고, 나를 보호하고, 부족한 나를 고쳐나가려 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하고 습관을 들이고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노력이 결국엔 그 누구보다 나는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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