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각커피 Sep 17. 2021

혼자를 감당하는 일상


나이깨나 찼지만 아직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프리랜서 겸 백수로 집에 오래 있으면서 나름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가 부모님께 의지를 많이 했나 보다. 집보다 가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손님을 맞이하는 '유일한 관리자' 입장이 되고 보니 내가 처리하기 싫어서 미루고 회피했던 일들을 억지로라도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방바닥에 떨어진 수박씨만 봐도 놀랄 정도로 벌레를 무서워했던 나다. 그런데 가게를 오픈하고 여름이 되자 출몰하는 벌레는 집과는 차원이 달랐고 상상을 초월했다. 주변에 불 켜진 곳 없는 한가한 골목에 유일하게 밝게 켜져 있는 간판을 보고 온갖 벌레들이 몰려들어 불빛 아래 동네 파티를 벌였다. ( 날벌레와 나방은 그렇다 쳐, 왜 평상시에 보기도 힘든 사마귀에 귀뚜라미, 무당벌레까지 모여드는지 정말 기가 찬다.) 자기들은 아주 신이 나서 간판과 창문에 달라붙으며 날아다녔지만 그 모습을 가게 안에서 보고 있자니 흡사 좀비 떼가 가게 앞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공포 그 자체였다. 퇴근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다. 살충제와 훈연제를 동원해 쫓아내고 죽이고 아무리 쓸어 담고 처리해도 그때뿐, 여름의 더위가 폭염이 될 때까지 벌레와의 전쟁은 하루하루 계속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뒷골목이라 가끔 문을 열어두면, 지나가던 배고픈 고양이가 방문한다. 길 고양이는 귀엽고 안쓰럽더니만 쥐의 방문은 이야기가 달랐다. 멍하니 가게 문을 응시하고 있는데 문 앞 계단을 앞발로 집고 몸을 일으키면서 쏙- 올라오는 쥐의 얼굴... 친구 집에서 본 햄스터와 비슷한 귀여운 얼굴이지만, 머리가 쭈뼛 서면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아무도 없는 카페가 쩌렁쩌렁 울리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게로 들어오면 어떡하지? 정신이 아찔했다. 다행히 소리에 놀라 쥐는 냅다 도망갔지만 그 뒤로 환기할 때 잠깐 빼고는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카페에서 세 번째 여름이 지나갔다. 어김없이 시작된 벌레 출몰에 속에서는 쌍욕이 자동 생성되지만 이제는 겉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긴 빗자루, 고무장갑을 이용해 신속하게 처리한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이 생긴다. 손님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니 매일 쓸고 닦고, 도저히 못 잡겠던 벌레를 잡는다. 남의 흔적이 가득한 화장실 청소는 기본이고, 건물주와 시설 문제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해결한다. 카페 가구와 기계는 웬만한 건 분해, 조립, 수리해서 쓴다. 전동 드릴을 다루고 실리콘을 쏠 줄 알게 되었고 매대를 직접 짜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생수 2리터짜리 6개 묶음을 양손에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옮기는 튼튼한 팔 근육으로 진화했다.


점점 누군가의 도움보다는 우선 혼자 해결해 보는 것에 익숙해져 진다. 지금까지 독립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성인이 된 지 한참이면서 나이와 어울리는 '어른'으로서는 조금 느리게 성장해온 것 같다. 카페도 어찌 되었든 혼자 몇 년을 꾸려나가고 있으니 독립해서 혼자의 삶도 우선 시작하면 갖은 시행착오를 이겨내 가며 성장하지 않을까? 뒷다리가 생긴 올챙이에 조금 늦게 앞다리가 생기듯, '어른 아이'였던 내가 조금씩 혼자를 책임지며 독립을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자.. 마음의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돈만 열심히 모으면 되겠는걸?




 





매거진의 이전글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