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각커피 Dec 22. 2021

연말이 되면 조금 우울해.








 이 그림을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인터넷으로 주문한 향수와 워커부츠가 도착했다. 충동적으로 지르긴 했지만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물건 2개 다 어딘가 애매했다. 실제 꽃향이 난다던 향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향이 강해서 뿌릴 때 굉장히 신중해야 했다. 옷 끝에 살짝 뿌려야 적당한 향기가 올라왔다. 향이 얼마나 강한지 뿌리지도 않고 올려만 놨는데 향수가 있는 내 방에 들어가면 그 향기가 난다. 2만 원 대 가격에 산 저렴이 워커부츠는 모양도 예쁘고 정사이즈로 발이 딱 맞았지만 하루 종일 신고 다니니 양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고 벌써 앞 코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주말에 친구와 같이 간 초밥 맡김 차림은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초밥을 다양하게 먹어 볼 수 있어 좋았다.(상상한 광어 초밥은 나오지 않았고 굉장히 특이한 어종으로 다양하게 나왔다.) 그날 나도 이 식사 때문에 멋을 낸다고 부츠를 산 건데 친구도 비슷한 생각으로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를 신고 왔다. 오랜만에 나들이에 몇 년 전 사 두고 한 번도 신지 않은 롱부츠를 꺼내 신었다는데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세월의 무게를 정통으로 맞은 '그 롱부츠'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부터 겉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한다. 친구가 너무 창피해했지만 나는 그냥 좀 낡아 보이는 롱부츠 정도로 보여서 걱정 말라고 근심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초밥을 먹을 동안 계속 친구 주변에 조금씩 가죽 가루가 떨어지더니 밥을 먹고 밖을 나서니 그렇게 낡아 보이지 않던 롱부츠는 위쪽까지 다 갈라지고 찢어져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신겨져만 있던 신발이 한순간 말 그대로 '거지발싸개'가 되니 그 모양이 너무 웃겨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친구는 근처 신발가게에서 비슷한 신발을 아주 싸게 득템하고 멋진 새 롱부츠로 갈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대했던 일들도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작은 사건도 친한 사람과 함께하니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추억이 된다. 2022년도 그런 순간들과 기억들로  삶이 꾸려지지 않을까? 나쁜 기억에 밑줄 그으며 곱씹어 기억하며  신세를 한탄만 하지 않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기억하고 안아 들어 2022년을 향해 당차게 걸어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 에세이《이까짓, 생존》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