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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Dec 19. 2020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은 사람을 위한 책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제목 이미지는 표지의 그림을 찍어서 올렸습니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혐오한다.

지독하게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뻔한 말을 꿈을 이룰 것이라면서 달콤한 마약처럼 속삭이는 책이라면,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가 맞다. 이 짧은 메시지밖에 없는 말을 한 권으로 만들려고 이것저것 짜깁기하니 정작 읽고 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쓰기의 감각"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때 인상은 그런 의심이 들게 만들었다.

첫 부분의 내용이라는 것은 단지 '언제나 글을 써라'라는 메시지가 전부인 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정신질환을 언급하면서 글을 쓰는 과정은 그런 과정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거북하게 느껴졌다. 자기계발서도 이 정도면 심한 부류에 속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의 아버지가 새에 관한 리포트를 한 글자도 쓰지 못해 슬퍼하는 아들에게 하는 말을 읽고서야 나는 이 책이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별 것 아닌 내용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회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 작가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아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에서는 종종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너무 커다란 일이 맡겨진 것 같고, 손조차 대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존경하던 상사 분은 작가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말하곤 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만큼씩 나눠보라"라고. 그 생각이 스치면서 작가가 그저 내용 없는 희망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이 책의 원제는 "bird by bird"이다. 역자의 후기에도 이 제목을 직역하면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다. 아마도 작가는 글쓰기라는 작업이 정말 고되고 두려워도 어떻게 해야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처음에 이야기한 각종 정신질환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고된 작업을 하고 책이 나오는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경험을 작가는 매우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 가졌던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창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할 것 같다. 작가라면 빈 화면에, 화가라면 빈 캔버스에 어떤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자기 비하에 빠지거나 공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코딩을 하는 개발자인데, 나 역시도 빈 화면을 볼 때마다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많이 쌓아간 사람일수록, 혹은 아직 겪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책에서 어떤 방법을 찾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주의는 당신의 글쓰기를 망치고, 창조성과 장난기와 생명력을 방해한다.



나는 내가 하는 작업이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망설이는 적이 많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완벽주의'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완벽주의'에 포함된다고 본다. 완벽한 순간이 오지 않듯이 모든 것이 준비된 시기 또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많은 시도를 해본 사람답게 이 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나 솔직하게 자신을 비하하듯이 하는 이야기는 작가가 독자를 가르치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을 고백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자칫하면 꼰대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풀어놓은 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플롯이나 등장인물에 대해서 쓰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절묘하게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과 어떤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이야기를 섞어놓았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시행착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행착오를 하다 보면, 분명 잘 되는 날도 있고 완전히 엉망인 날도 있다. 특히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그 스트레스 또한 어마 무지하다. 어릴 때, 시험 점수를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두려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그런 스트레스 말이다. 그럴 때는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매일 하던 일도 흔들리기 마련인데, 작가는 그런 나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대신 묘사해주고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재능이나 통찰력이 없다는 둥 자기혐오로 랩을 하는 방송국이 머릿속에 있다는 작가의 표현은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런 방송국이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재미를 넘어서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작업을 망쳤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다 괜찮은 일이었구나, 모두가 겪는 과정이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외에도 자기 나름대로 많은 번민과 고통을 겪으며 쌓아온 성과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을 보았을 때의 질투심, 그리고 남의 평가에 주눅 드는 날 등 나의 성취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날들이 떠올라서 웃게 되고 때로는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이야기였다. 역자의 표현을 빌리면, 작가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솔직한 고백 같은 이야기들이 글쓰기뿐만 아니라 어떤 성취를 쌓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에 괴로워하고 울어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일이 힘들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한 번씩 읽어보면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뻔한 내용일 수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에 괴로워했던 지난날들을 위로해주는 한 구절을 더 인용하고 부족한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자신감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이며, 당신의 머릿속이 텅 비어 있을 때도 온갖 이미지와 아이디어와 향기를 폭포수처럼 퍼부어 당신을 가득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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