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피에르 바야르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기대했다가 큰 코 다쳤다. 이 책은 제목에 비해서 꽤 심각한 책이다. 읽는 내내 생각보다 만연체인 문장과 심각한 내용 덕분에 힘들었다. 제목에 끌려서 구입했다가 나처럼 낭패를 보지 않기를 바라며(?) 서평을 남겨본다.
'읽지 않았다'라는 상황이 무엇을 말할까? '읽었다'의 반대 상황이 '읽지 않았다'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의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읽지 않았다'라는 상황을 다시 4가지로 나누는데, 결과적으로 '읽지 않았다'는 상황은 '읽었다'의 정확한 반대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읽지 않았다'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희화화하는 책은커녕 진지하게 '읽지 않았다'는 상황을 파고드는 책이었다.
'읽지 않았다'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귀동냥한 경우', '읽었는데 잊어버린 경우'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즉, '읽지 않았다'는 상황이 명확할 수는 없으며 이 상황 자체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읽지 않고도 책의 내용을 아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히려 독서라는 행위가 책의 내용에 얽매이게 만들어서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다소 파격적인 주장일 수 있는데, 어떻게 '읽지 않고도'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었거나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들었거나 내면의 교양으로도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읽어보면 납득이 가면서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려면 다른 책을 많이 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교양'에 대해 이야기한다(여기서 말하는 교양은 잘난 체를 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이야기한다). 교양은 책 개별 권에 대한 이해보다도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각 책의 지식을 연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교양이 어떤 책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자신의 머릿속 도서관에 위치시킬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야기인데 실천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책이 어떠한 수준인지, 그 책에 대해서 비평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독서 시간은 6분이면 충분하다는 내용도 있다.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면서도 교양을 많이 쌓아야 가능한 경지가 아닌가 했다. 그 외에도 읽다 보면 파격적이고 놀라운 내용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렇다고 이 책을 부정하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독서에 대해서 그간 가져왔던 이미지를 부수고, 교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놀라운 주장의 연속이지만 작가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이 드러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뒷면에 움베르토 에코의 추천사도 있는데, "이 책은 불완전한 독서와 비독서를 포함한 온갖 읽기 방식의 창조적 국면에 주목한다."라고 쓰여있다. 그 외에 다른 추천사를 보면 책을 모두 읽어야 하고 내용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되어 있는데, 책을 읽고 나서 이 추천사에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지만 깊이가 꽤 깊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완독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거나 교양이란 무엇인지 더 깊게 생각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스포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피해야 한다. 결말의 범인까지 다 나와있는 책이니 <장미의 이름>을 읽고 책을 읽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