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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un 15. 2021

연달아 읽은 산문

김영하의 산문

최근에는 김영하 산문집을 여러 권 읽었다. 

처음에는 <여행의 이유>로 시작했다. 이전에 보았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산 것이 발단이었다. 김영하 작가를 처음 접한 것도 그 프로그램 때문이었고, 그때까지도 잘 모르는 작가여서 김영하의 소설도 읽지 않은 채였다. 내가 소설보다는 논픽션 장르를 좋아해서 접할 기회가 잘 없었던 탓도 있었다.

TV로 보았을 때 워낙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서 책을 한 번 사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권을 샀는데 지금은 어쩐지 3권으로 불어났다. <다다다>의 경우 원래 3권으로 나누어 출판되었던 책을 묶은 것이라 5권이라 볼 수도 있겠다.


산문집이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기 때문에 내가 읽은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아 이 글을 쓰는 공유하는 것 자체를 망설였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푹 빠져들었던 경험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 책을 접하게 될 사람들에게도 참고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공유해본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내 독서 취향은 논픽션으로 기울어져 있다. 문학 장르를 잘 접하지 않는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고르고 읽었던 책이 주로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거기서 인사이트를 얻는 책들이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이슬아 작가의 수필 약간이랑 <읽는 직업>, <혼자여서 좋은 직업>처럼 어떤 직업과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다. 그런 내가 한 작가의 산문을 연달아 읽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한 권을 읽고 나서 '김영하'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산문집들을 한 번에 주문했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면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나름대로 기록 삼아서 적어본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글자 하나하나가 이슬처럼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싶을 정도로 글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현이 넘실거린다. 나는 그런 글을 쓰는 분들을 존경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글이 편하지가 않다. 산해진미를 너무 많이 먹은 것처럼 어딘가 행복하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데, 건조한 문체 속에서도 많은 생각과 사실을 겹겹이 쌓아놓은 글을 보면 편안하면서도 무척 감동적이라 느낀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은 문장 하나하나가 풍부한 색채를 지닌 문체는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쉽게 읽히는 문장이다. 그러면서도 길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일감 있게 구성해나가는 글이다. 자신의 경험과 알고 있는 지식을 절묘하게 결합시켜서 진행하는 방식인데, 볶음밥 마냥 밋밋하지 않고 서로 다른 맛이 어디선가 톡톡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글이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 나에게는 익숙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맛이었고, 마냥 먹어도 물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취향 저격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방송에서도 보았지만 아는 것이 참 많은 작가이신데, 여행을 다녀온 산문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거나 다른 책들을 인용한다. <여행의 이유>는 여행기는 아니지만 여행에 관한 산문에서도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오고,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시칠리아 여행기인데도 오디세우스와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다도 그런 이야기가 여행지를 더 풍부하게 은유해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또 다른 지식들이 논픽션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다다>는 <보다> <읽다> <말하다> 세 권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값도 두께도 그만큼 나가는데, 나는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릴까 봐 아껴서 읽는 바람에 한참 걸려 읽었다. 내용은 여행기보다는 약간 더 딱딱하다. 김영하 작가가 겪었던 일이나 보았던 TV 프로그램,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와 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강연록 등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읽다>의 경우에는 다양한 책이 나오는데 몇 권의 책을 하나의 글로 녹여낸다. 글 한 편 한 편마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권을 책을 꿰매는 것이 신기했다. <말하다>는 책을 인용하기보다는 날 것에 가까운 작가의 생각이 전해졌다. 앞의 다른 글들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면, <말하다>는 인터뷰 질문이나 강연 내용에 따라서 작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한 내용이다 보니 짤막하게 쓰인 내용들이 이어지는데, 오히려 짧고 빠른 내용 속에서 작가가 어떤 주제를 무척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굳이 내가 더 덧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모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나 재밌었다. <다다다>와 같이 산문만 묶어놓은 책도 무척 좋았지만, <여행의 이유>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은 여행기는 특히 더 재미있었다. 시칠리아 여행기를 읽으면서 파스타도 몇 번 먹었을 정도로 여행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던 것 같다. 생선 가게 이야기나 파스타를 만드는 대목에서는 꽤 몰입했다. 시칠리아의 리파리를 떠나올 때 들렀던 생선 가게 아저씨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대목에서 살짝 뭉클했을 정도로 깊숙이 글 속에 빠져있었다.


'거기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른다는 말을 인용하여 작가는 '소설이 있으니' 소설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애초에 소설을 읽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단순히 소설이 있기에 소설을 읽는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도 갑자기 연달아 김영하의 산문을 읽은 이유를 표현하기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있다. 한 권을 읽어버려서 시작했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단순히 읽고 싶어서 읽었을 뿐이다. 아마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김영하의 산문이 있었기 때문에 읽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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