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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ul 08. 2021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한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마쓰이에 마사시

내 독서 취향이 너무 비문학에 치우쳐 있어서 소설을 좀 읽어야겠다 하던 차였다. 마침 <김영하 북클럽>의 7월 책으로 이 책이 선정되어서 구입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라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망설여진다.


소설의 배경은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 사람들의 여름 별장이다. 이 여름 별장에서 사무소 사람들은 무라이 선생님과 함께 숙식을 하며 일하는 내용이다. 소설의 전개 자체는 시종일관 잔잔한 편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여름을 둘러싼 표현과 건축과 자연에 대한 지식들을 즐기는 편이 좋다. 소설 안의 세계는 굉장히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고, 여름 별장을 둘러싼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담담한 문체를 유지하며 섬세하게 여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를 떠나서 소설 속의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 맑은 날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바비큐, 한 밤 중의 반딧불 등 여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방구석에서 여름다운 기분을 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건축 설계사들이 나오는 소설이니 만큼 건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소설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해 준다. 연필로 설계도를 그리는 장면이나 모형을 만드는 장면, 그리고 건물을 설계하면서 토론하는 내용이 자세하고 섬세하여 사실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책 띠지에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성도이다"라는 말이 적혀있는데, 한 장면 한 장면이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런 점에서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별장은 화산 근처에 있어서 화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책의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이다. 책을 읽을 때 원제도 고려해서 읽으면 화산이 나오는 장면이 납득이 간다. 한국어 제목은 한국에 '화산'이 없으니 피해서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한국어 제목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사된 여름 풍경이 여름에 어딘가로 쉬러 떠난 듯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에게는 특히 오래 남을 것 같은 여름이라는 점에서도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여름휴가에 읽을 만한 책으로는 딱이다. 나로서는 조금 더 문학을 접하고 싶게 만들어준 책이다. 오랜만에 소설에 빠져서 여름을 즐기다 나온 기분이었다. 급박한 전개보다는 편안하고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글 속의 세계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역자의 후기가 책 마지막에 나와있는데, 일본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의문이 남았던 부분을 세세하게 풀어주었다. 더불어 섬세한 소설을 훌륭하게 번역한 역자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싶다. 덕분에 여름 정취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느낄 수 있었고, 휴가를 다녀온 기분을 선물로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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