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김 Jul 11. 2021

반지성주의의 폐단

미국의 반지성주의 - 리처드 호프스테터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1962년에 쓰인 책이 2017년에 번역되어서 나왔다는 점이다.

2017년은 트럼프의 당선에 힘입어서 '반지성주의'에 대한 반성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2021년 현재 트럼프는 아슬아슬하게 재선에 실패했지만, 당시에는 반지성주의가 트럼프의 당선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대해 광범위하게 분석한 이 책이 다시 2017년에 주목받게 되었다. 미국 내의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미국 사회는 왜 지성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 출판된 지 오래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책에는 많은 역사적 사실이 나열되어 있다.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개척 시대를 지나는 동안 교양 있는 사람보다는 당장 집을 짓고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더 중요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기보다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부만 하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났고, 미국 사회는 지적인 사람보다는 '실용적인' 사람들이 주류가 되었다.


지식인들이 주류였던 정치에서도 지식인과 일반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높은 대학 등록금을 내거나 집에서 책만 읽을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른바 '엘리트'들이다. 미국 사회는 대학을 나온 특정 계급의 사람들이 특권을 가져가는 것을 경계했다. 이는 '비민주적'이고 평등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미국 사회에는 '지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생겨나 있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착취해간다고 여긴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를 종교, 정치, 사회, 교육 면에서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미국이 지성을 경계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납득하게 되었다. 다른 국가와는 판이하게 다른 국가 생성 과정을 거친 미국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지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경계하는 까닭은 지성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지성주의의 결과로 미국은 매카시즘 광풍에 시달리면서 많은 지식인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부시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미국 사회를 흔들어놓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은 쉽게 가짜 뉴스에 휘둘리게 되었고, 전문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아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등 잘못된 정보가 쉽게 확산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지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미국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과 상관없이 반지성주의가 득세하는 경우는 주로 독재자가 있을 때이다. 독재자들은 비판을 피하기 위해 지식인을 탄압하고 사람들을 자극적인 오락거리만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진시황부터 히틀러나 유신 정권까지 사람들을 지식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시도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첨병인 미국이 반지성주의를 기저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 지성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이 올바른 정보를 판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저자는 지식인이 일반 대중에게 신뢰를 얻어야 이러한 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는 아직 지식을 중요시하고 지식인에 대한 신뢰도 낮지 않아 보인다. 물론 사회적으로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는 현상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인을 경시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을 배제하려는 경향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다만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반지성주의를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가짜 뉴스가 여러 가지 미디어를 통해 쉽게 확산되는 것을 보면 반지성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언제든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였어도 이 책이 여전히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책이 쓰인 지 60년 가까이 되었어도 여전히 반지성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동작하도록 하려면 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현대의 문제를 다루는 책에 인용하기에는 아주 오래된 말이긴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인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지혜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방탕하게 되고
믿음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남을 해치게 되고
정직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가혹하게 되고
용기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강직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경솔하게 된다.


지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반지성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로도 보인다. 지성은 비단 민주주의뿐만이 아니라 이 말이 이야기해주듯이 나름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과 같이 반지성주의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와 비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반지성주의의 원인을 상세히 알려주지만, 읽는 사람에게 반지성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되어주었다. 또한 '지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또한 교육 면에서도 조금 더 성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


오래된 책인 만큼 여성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불편한 면이 있다. 또한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고 재미있게 흘러가는 책은 아니다. 다만 여러 가지 면에서 한 주제를 둘러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반지성주의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이 사고 싶어 지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