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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Aug 21. 2021

책상 위에서

책상이 보여주는 것


예전에 한 번은 바이올린 공방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공방은 사장님의 작업대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책상이라기보다는 작업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넓은 고무판 위에는 각종 공구와 나무 조각들이 올려져 있었다. 잘 정리된 공구와 바이올린 본을 뜬 나무, 드문드문 늘어져 있는 톱밥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만들어지거나 고쳐질 바이올린의 소리와 아름다운 모양새가 그 작업대 위에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낯선 책상의 모습은 책상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지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공방의 작업대와 달리 사진 속의 책상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쁘다. 인스타그램에서 #공부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찍어 올린 책상들이 자신의 주인을 자랑하기 바쁘다. 어떤 책상은 주인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어떤 책상은 주인이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어떤 책상은 주인이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으면 책상의 모습이 이렇게 다양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 아름답고 책상 주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내 책상도 몇 차례 찍어서 올렸다. 별 거 없는 책상이라도 나름대로 내가 사용한 감이 있는 책상이니 어떤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쓰는 책상이니 어떤 모습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사진 속의 내 책상도 분명 어떤 표정이 있을 것 같았다.







내 책상은 흰색이다. 책상 위에는 마찬가지로 하얀 작은 책꽂이가 있고, 하얀 조명이 하나 있다. 작은 고무나무 화분도 하나 있다. 필수품인 노트북 한 대와 하얀 테두리의 모니터가 있고 마찬가지로 흰 색인 해피해킹 키보드가 있다. 가운데에는 하얀색 작은 정리함이 하나 있다. 거기에 펜이나 메모지를 꽂아두고 사용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오렌지 색의 일기장이 하나 놓여있고 구석에는 읽을 책들이 쌓여있다. 그밖에도 연필깎이나 작은 장식품, 다이어리 등이 놓여 있다.


가끔 정리하지 않고 책상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면 책상은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치 머릿속을 투영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책상 위의 물건들은 최근에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보여주고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한동안은 개발에 관련된 책만 쌓여있곤 했는데 지금은 개발과는 상관없는 책들이 쌓여있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소설책이 올려져 있고 에세이집도 몇 권 올려져 있다. 요즘은 개발보다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물건을 늘어놓는 대신, 책상을 정리하면 머리 속도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 단지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든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관심에서 멀어지고, 손에 닿지 않으면 굳이 꺼내서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도 자연히 잊힌다. 더 이상 책상 위에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들을 구분해서 정리해버리면 그 물건은 내 머릿속에서 나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책상으로 내 머릿속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공부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책을 읽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거나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을 것 같다. 책상이란 건 하나의 작업대이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까.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책상 위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게 된다. 뭐, 하지만 회사에서는 책상 위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기도 한다. 아니면 학생 때 공부하기 싫은 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신기한 건 기쁠 때는 책상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기쁠 때는 주변에 소식을 알리거나 무언가를 먹고 마시거나 방 안을 돌아다니게 된다. 언뜻 생각해보아도 엄청나게 기쁜 사람이 책상에 앉아있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식탁이라면 모를까 책상은 기쁨과 완벽하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즐거움이 책상 위에 있을 수는 있어도 기쁨은 책상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힘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쁨은 문명화되지 않고 원시 상태 그대로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책상은 문명화된 사람이 앉는 곳이니 말이다.


책상이 언제 생겨난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글자를 사용하는 문명이라면 책상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물건인 탓에 책상에 오래 앉아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몸에도 나쁘고 정신적으로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책상에 앉은 자세는 문명화된 자세이지만 동시에 태초에는 취할 일이 없었던 부자연스러운 자세이기 때문이다. 책상에 오래 앉았을 때 느끼는 고통은 문명을 일궈낸 인간이 포기해야 했던 편안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수렵 채집이 농사를 짓는 것보다 행복도가 높은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한다. 집구석에 있는 사람에게 책상은 그나마 바깥과 소통하게 해주는 공간이자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다. 짧게 줄이면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소리다. 요리사에게는 주방이 있고 화가에게는 캔버스가 있듯이 직장인에게는 책상이 곧 작업대이다. 특히 요즘처럼 나가는 일 없이 하루 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책상이 소중해진다. 책상과 의자 높이를 적당히 조절해야 오래 일해도 무리가 없고, 눈이 건강하려면 책상 위의 조명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잠시 책상을 떠나 밥을 먹고 오거나 산책을 다녀오면 책상 위에는 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체로 아무 느낌 없이 다시 앉아서 작업을 이어서 하곤 하는데, 가끔은 내 흔적에 어떤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책상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든다. 다른 사람의 책상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요즘은 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내가 요즘 어떤 것에 신경 쓰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책상이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책상이 좀 지저분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인상이나 성품은 어느 정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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