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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07. 2020

전농동엔 아무책방이 있었다

아무책방이 2020년 2월 29일자로 종업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무책방을 믿고 위탁해주셨던 제작자 님의 책을 반품하고자 연락드립니다.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 죄송합니다. 반품 받으실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신다면 3월 마지막 주중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책방의 종업 소식을 확인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의 코로나 시대, 벌써 두 번째 받는 입고 서점 폐업 알림 메일이었다. 한 곳은 2월 중순을 끝으로, 한 곳은 2월 말일을 끝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소식을 받고서야 느꼈다. 작년에 (서울에서 경기로 이전한 곳은 있었지만) 서점 폐업 소식을 못 받은 건 당연한 일이 아닌 다행스러운 일이었구나. 알리지 않고 문을 닫은 서점도 있겠지. 깔끔한 마무리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저널 <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발견하는 지역 서점들과 거래를 튼 지 올해로 3년차다. 그 서점들은 <삼> 입고 전부터 이미 운영 중이었으니 분명 작년이나 올해 중 한 번은 임대 계약 갱신 시기를 맞았을 거다. 2월에 정리한 두 책방은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거고.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책방 운영이 어려웠구나, 어쩌면 새 일을 찾아 떠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의 변화와 연결된 모든 경우의 수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특히 '우리'에게, 무려 십 년 이상의 시대 차이를 두고 있음에도 줄곧 밀레니얼 세대로 퉁쳐서 소환되는 내 ‘또래’ 집단에게, 일이란 하나의 직업이 아닐 때가 많으니까. 나도 꽤 오랜 시간 했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 혹은 커리어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책을 입고할 때 왜 나는 각각의 서점들이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 대형 서점도 책 판매로 수입을 올리기 어려운 시절인데. 생각해보면 S도 소규모 책 대여점을 몇 년간 운영하다 결국 문을 닫았다. 책방의 두 번째 장소에서. 포장이사따위는 개나 줘 버린 자영업자 S의 이사를 도와 팔이 얼얼해지도록 책 묶음을 날랐던 바로 그곳에서 책방은 영업을 종료했다. 서점의 운영고를, 책을 중심으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는 서점들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처음부터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적어도 <삼>을 입고한 서점들과 함께 뭐라도 해볼 수 있었을까. 그랬어도 종업을 막을 순 없었을 테지만 이미 문을 닫은 서점들을 한참 떠올렸다. 도서정가제조차 지켜내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같이 버텼던 사람들.


아무책방 종업 소식에는 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같은 달에만 두 번째여서, 뭣보다 그곳은 J의 책방이어서였다. 책 거래를 트기 훨씬 전부터, J가 책방을 개업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책만 택배로 보내고 한 번도 못 갔는데, 종업 소식 메일 확인마저 일주일을 넘겨 답신도 늦은 상태였다. 일주일간 <삼> 업무 메일을 확인 안한 것에도 마땅한 부끄러움들이 들쑥날쑥 돋았다. 아무책방 안내대로 입금 내역 확인차 서점과 거래 내역을 훑었다. 최근일수록 거래 기록이 듬성듬성했다.


J는 용산구에 위치한 C 교회의 청년회에서 처음 만났다. 성실한 회원 J를 나는 모임에 띄엄 띄엄 참석할 때마다 당연하게 만났다. 내가 C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그마저도 J의 얼굴을 볼 일이 없어졌지만. 그때 J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책방 주인이었고, 과거엔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간혹 짧은 이야기를 J와 주고받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J가 책방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안 건 해방촌 어느 카페에서다. 그날도 우연히 C 교회 청년회의 다른 멤버 E를 만났다. 해방촌에 위치한 한 서점에서 참고할만한 출판물들을 구매하고 카페에 들렀는데 창문석에 그녀가 있었다. E에게서 J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아무책방을 열어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들떴던 그때는 막 잡지 기획에 들어간 참이었다.


입고 문의를 넣을 때 J는 벌써 2년째 아무책방을 운영 중이었다. 독립출판물을 많이 받던 초기와 달리 판매 문제로 입고를 주춤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후로 또 2년이 지나 J의 아무책방은 종업했다. 놀러오라는 그의 말에 나도 간단한 안부를 물으며 그러겠다고, '얼굴입고'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못했다. 전농동은 꽤 멀지만 J 덕분에 꼭 가고 싶은 동네였고 결국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 되었다 아무책당은. 거기서 그녀와 더 오래 이야기 나누면 더 재밌는 일이이 생길 것만 같았다.


J에게 받은 사진. 짐은 모두 빼고 아무책방이었던 공간에 J가 서 있다.

J의 아무책방은 전농동에 4년간 있었다. 그녀의 종업 알림 메일에는 책방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정기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그게 미안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뒤늦은 회신에 끝내 못 가본 슬픔과 미안함을 담은 나는 J를 꼭 만나고 싶다고, '얼굴반품'을 하고 싶다고 남겼다. 회신을 기다리며 아무책방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접속했다. 아름답고 무용한, 이 책방은 2월 29일에 마지막 게시물을 남겼다.


2016년 7월 30일부터 운영한 00책방은 오늘 2020년 2월 29일자로 종업합니다. 지금까지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기꺼이 함께 책방 문을 열고 닫았던 여러 책방 지기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아무책방에 책을 입고해주셨던 독립출판제작자 분들께는 미안한 말씀 전합니다. 재고 확인과 정산, 소통 등 미흡했습니다. 3월 중으로 개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00책방에서의 아름답고 무용한 시간 함께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며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00책방에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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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지기들의 굿바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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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Amour), 나의 춤(我儛), 이야기를 엮어내는(--), 내가 없어지는(我無), 상처가 조용히 아무는, 무용함을 아름다움으로 다독여주는, 자유로운 아무(any). 한마디 말 속 여러 뜻을 맛보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아무에게, 지기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남깁니다.
그럼 모두, 아무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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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무용한, 그 공간에서-
나는 정량 할 수 없고 상품화 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것'에 끌렸고
인간과 인간사이에 필수하지만 종종 무용하게 취급되는 아름다운 ‘그것'을 누렸다
나와 너 사이에 유용함이 요구되지 않아 서로의 아름다움에 집중 할 수 있었던 그 공간 아무에서-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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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책방을 하고자 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나의 일이었고 모든 일이 그렇듯 일 속엔 고됨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문이 안 열린다 생각하니 갑자기 아무가 정든 나를 두곡 떠나려는가 하는 것 같은데 걱정마 계속 살아있는 거야 우리들의 기억 속에.


J는 책방 마지막 영업일 이후로 30일 정도를 보냈을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3일째 답신이 없었다. 확인했다면 분명 답신을 보낼 J였다. 책방을 정리하고 뭘 하고 있을까. 하루를 더 기다리고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카카오톡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J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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