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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May 12. 2024

엽편소설 ; 이발소 아들 한철이

  금방이라도 풍압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주변 고층 빌딩들의 벽면을 타고 밀려오는 바람이 마치 나를 떨어뜨려 죽이려는 듯 난간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옥상까지 따라온 노모는 얇은 고철의 울타리를 경계 안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한숨으로는 부족했는지 말을 뱉었다가 끊었다가 삼키기를 반복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민준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런다고 한철이가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니 씨발, 그게 아니라 내가 진짜 당신 아들이라고. 기력이 빠진 노모가 자리에 주저앉았고 두 손을 모으고는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아래가 소란스러워 내려다보니 경찰들이 시민들을 통제하며 공간을 확보하고 뒤따라 소방관들이 그 자리에 에어매트를 깔고 있었다. 내 몸에 깃든 사탄과 악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던 노모는 급기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바람을 찢고서 난간 너머까지 날아왔다.
  이 미친 노인네가, 진짜 당신 아들은 한철이가 아니라 나라고, 나 강민준이라니까. 맨 정신에도 부정하며 작은 믿음마저도 가지지 못했으니 저 상태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등신같이, 내가 당신 아들이라고. 왜 못 알아보는 거냐고. 자칫 손이 풀려 떨어질 뻔했고 저 아래 도로에서도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내가 평생 의심했던 부분을 꼭 확인해야 했다. 응급실에 들어가는 한철이의 목에 수평으로 이어져있던 줄선이 봉합선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이미 그의 시신은 이송되어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염습 때뿐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와 친척들은 한철이의, 근육이 쪼그라들어 뼈의 형태가 온전히 드러난 얇은 살거죽을 닦고 있었다. 그들을 밀치고는 그의 목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확실한 봉합자국이었다.
  심증에서 확증으로 바뀌었다. 팔다리를 붙드는 장례식장 직원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간신히 떼어놓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내가 진짜 당신 아들이라고. 뒤바뀐 줄 알았던 남의 자식이 실은 진짜 당신의 아들이 맞다고. 그러니까 더 이상 자책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뒤져버린 한철이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은 여기 잘 살아있다고.
  내가 스무 살이 되었던 늦은 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숨겨온 사실이 있다고, 나는 그런 거 전혀 상관없다고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자신이 낳은 애가 아니라고 했다. 이웃으로 지내던 친구와 같은 산후 조리실에서 서로의 아이가 바뀌었는데 본인도 그 사실을 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면 당신의 아들이 누구냐고. 노모는 비록 제가 품지는 않았어도 아들은 나뿐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유년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놀러 갔던 이발소, 친구의 아버지가 머리를 잘라주겠다던 때가 있었다. 진작에 의심부터 했어야 했다. 내 어릴 적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도, 내 목에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상흔도, 그리고 한철이의 목에 그어진 똑같은 상처도 모두 한 가지의 진실로 이어지는 중이었다.
친구네 이발소에서 기억을 잃고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얼굴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있었고 내 옆자리에는 그 친구도 누워있었다. 노모는 내 목에 상해를 입혔던 그를 고소하지 않았다. 단지 실수일 뿐이라고,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고. 이제 막 자라는 아들도 신경 쓰셔야 하지 않겠냐고. 이후로 병실에서 친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서로의 영혼이 바뀐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영혼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이 바뀐 것이 확실했다. 사건의 시기와 서로의 상처가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발소에서 그의 면도칼로 서로의 얼굴이 도려지기 전에는 내가 한철이었던 것이다. 십 년이 지나고 나서 뒤바뀐 아들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그 이발사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노모도 자신의 아들이 돌아온 줄도 모르는 것이다. 제 자식인 줄 알고 있는 한철이의 장례식에서 오히려 그의 부모보다 더 서럽고 비참하게 한철이의 영정사진을 붙들며 오열을 하는 것이었다.
  멍청한 어머니, 제 자식이 이렇게 아직 살아있는 걸 모르니까 저러지. 그래서 나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철이의 시신까지 이렇게 끌고 와서 설명을 하는데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노모에게 확인을 시켜주면 그때는 정말 믿어주겠지. 내 목의 봉합선과 죽은 한철이의 봉합선은 서로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니까. 나는 가짜가 아니라고, 남의 자식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아들이라고.
  "엄마.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증거로 장례식장에서부터 끌고 온, 1층 앞 장의차에 실린 한철이의 시신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나는 옥상에서 1층까지 제일 빠른 방법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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