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류작가지망생 Jun 20. 2022

엽편소설 ; 4차선 횡단보도

//

 옥분은 4차선 대로변 횡단보도 앞에서 발이 얼어붙었다. 떠올려보려 노력했으나 무엇을 떠올리려고 했던 것인지조차 잃어버린 채로 옥분은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를 다섯 차례나 떠나보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에 몸이 끓어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옥분은 그늘 쪽으로 몸을 피신했고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옥분은 바짓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직 뜯지 않은 알사탕 두 개와 사탕 껍데기가 나왔다. 사탕 하나를 입에 까넣고 나머지는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옥분은 찐득하게 눌어붙은 사탕 표면을 혓바닥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뭘 하려고 그랬더라.

 옥분은 거꾸로 유추해보기로 했다. 4차선 대로변 횡단보도 이전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는데 횡단보도를 건넜었는지 아니면 건너려고 서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디를 가고 있었더라. 옥분이 새끼손톱만 해진 알사탕을 혀로 굴리다가 턱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와 무릎 위에 떨어졌다. 옥분은 사탕을 집어 들어 쇳소리 섞인 숨 바람을 두 차례 불어내고는 다시 입에 집어넣었다.

 옥분은 길을 걸으며 떠올려보기로 했다. 지팡이를 땅에 짚고 양손으로 몸을 끌어올려 두세 걸음 걷는데 머리가 왼쪽으로 조금씩 기울어갔다. 반고리관이 문제인가 싶어서 옥분은 손바닥으로 관자놀이 부분을 두들겼다. 놀랍게도 균형이 조금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옥분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초록불이 또 두 차례나 지나갔지만 옥분은 건널 수가 없었다. 건너편의 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국의 것 같았다. 중앙에 얇고 길게 경계 진 차선을 건너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옥분은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옥분은 잔향만 남은 사탕의 점액을 혀로 훑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옥분은 폴더폰을 꺼내 들었다. 폴더를 열고 화면을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다시 닫았다. 옥분이 주머니를 뒤져 마지막 남은 사탕을 입에 넣었다. 옥분은 문득 초록색 뚜껑의 원형 사탕 케이스를 떠올렸다. 거실 탁자 위에서 한 움큼 쥐어 주머니에 넣었었다. 옥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기억해냈다.

 옥분이 다시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 사선으로 두세 걸음 걷다가 관자놀이를 몇 번 두드렸다. 그제야 옥분은 확신이 들었다. 저 국경 너머에는 자신의 집이 있노라고. 보행자 신호가 돌자 옥분은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옥분은 신호등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했다. 결국은 마침내 건너편에 도착한 것이다. 옥분이 기쁨에 겨웠는지 혀로 사탕을 굴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옥분은 숨이 차올라서 눈앞의 벤치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옥분은 거리를 구경했다. 하나같이 찌그러진 도자기처럼 찡그린 얼굴들을 하는 가운데 옥분만 가장 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탕이 다 녹아 사라지자 옥분이 주머니를 뒤졌다. 사탕 껍데기만 가득했다. 옥분이 아쉬운 표정으로 양쪽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더 먹을 건 없었다.

 옥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왼쪽 사선으로 두세 걸음을 옮겨 횡단보도 앞에 섰다. 옥분은 횡단보도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