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중입니다.

3화. 오늘은 내가 떨어지는 날이다. / 여성서사의 무기력 소설.

by 새얀 SEYAN

어둡고 습한 복도를 지나 303호에 도착했다.

내가 사는 집이다.


가볍게 주위를 둘러본다.

무엇인가 복도 끝자락에서 달려올 것 같지만 그다지 상관이 없다.


천천히 도어록에 손을 올린다.

감촉이 서늘했다.

내가 아니라면 만질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가끔은 이 안전함을 뜯어버리고 문을 열어 놓은 뒤 아무렇게나 잠을 청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해소되지 못할 욕구, 종종 그런 것들을 꿈꾸기도 한다.

가령 살인이라던가 지나가는 무구한 이에게 무자비한 비난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몸뚱이를 차가운 길가에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이상하게도 이런 비이상적인 욕구가 하루를 더 살게 한다.

한순간 더 버티게 한다.

이따위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아직은 괜찮으니 말이다.


키패드 뚜껑을 열다 말고 집 문을 바라보았다. 가끔 멍하니 이렇게 집 앞에 서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문을 바라본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수상하게 느낄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다고 한들 먹기 전까지는 내 밥상이 아니다.

이렇게 이상한 구석에서 이기적이기도 하다.


낡은 대문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난다.

그것 말고는 별일 없는 대문이다.




비밀번호를 여러 번 틀렸다.

비밀번호는 고작 네 자리다.


문이 열리지 않자 순간 숨이 멈칫했다.


손이 떨려 왼손으로는 키패드 뚜껑을, 오른손으로 패드 번호를 눌렀다.

경고음이 울릴까 조마조마하던 찰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안도감에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손을 더듬어 불을 켰다.

달빛만큼 잔잔하지 못한 조명이 켜졌다.


신발을 벗어 놓는 현관이 진흙처럼 푹푹 꺼졌다.

식탁에는 어젯밤 먹은 잔해들과 조금씩 남은 생수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식탁 의자에 가방을 걸었다.

가방에는 오는 길에 구매한 종량제 봉투와 내일의 잔해가 될 저녁거리가 들어있었다.


식사를 건너뛸까 고민하던 찰나에 식탁 의자가 큰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아까 놀란 심장이 다시 크게 뛰었다.


큰소리가 났던 주방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그저 가방에 있던 삼각김밥이 튀어나왔다.


쌓인 생수병을 향하고 있다. 줍지 않았다.


생수병 앞에 앉아 삼각김밥을 까먹었다.

김과 소금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엉덩이와 발바닥에 바닥의 찬 기운이 올라왔다.

미지근한 밥알을 혀로 짓이긴다.

식탁에서 무엇인가 떨어졌다.

가스요금 고지서였다.


상여금과 은행의 따뜻한 히터 바람과 무거운 유리문이 떠오른다.

손에 들린 김밥에서 소금이 떨어진다.


새삼스럽게 모든 것이 떠나간다.

오늘은 가벼워진 내가 떨어지는 하루다.


식탁 밑 먼지 때문인지 눈이 시렸다.

그리고 발이 아팠다.


-

이 집은 나와 함께 죽어있다.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나를 떠나고, 그렇게 가벼워진 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루다. 집도 나를 떠나려는 것일까? 나와 달리 살아있다는 듯 군다. 너와 나는 다르다고 한다.

집 천장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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