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마음의 정착지. -2

by 새얀 SEYAN

감정은 물과 같다. 갈 곳 잃은 물들이 고여 나의 통을 가득 채웠다. 나의 노력과 함께 갈 곳 없는 물방울들이 무리를 지었다. 난 그것을 넘치지 않게 조절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파도가 치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노력.'이라 칭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질문은 파급력이 컸다. 그날 이후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의문은 비난이 되었다. 의문에 답했다면, 이것은 응원이 될 수 있었을까?


줄곧 잠에 들기 어려웠다. 빛을 차단하는 것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외부와의 소통처럼 느꼈던 가로등 빛마저 차단했다. 정말로, 온전한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고독은 외로움을 곱씹는 행동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줄 곧 체하곤 한다. 외로움과 불안아 찾아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벗어나기 위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답을 찾는다.

귓가에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공포적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뇌 안에서 효과를 준 텍스트 마냥 선명한 질문. 그것은 사실 질문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다칠 것을 알고서도 행하는 사냥과도 같다.

'그게 뭐가 힘들다고.'

생각은 빠르게 달리는 기차와 같다. 천천히 뜯어볼 겨를 없이 달린다.. 머리칸을 따라 생각이 빠른 속도로 지나친다. 이 기차는 마음의 골짜기로 가는 기차다. 온갖 비난들이 나를 사냥해 갔다.


나는 힘든 것이 아닌, 그런 척을 하는 것이다.

나의 못남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나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게으르고, 동정을 바라는 거지다.

그 밤은 참 길었다. 방 안은 소리 없는 소음이 가득했다. 나는 여러모로 소음에 약했다.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은 내 마음의 물들이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지 않게 가두어주는 댐이다.

상담사와의 대화는, 대체적으로 나의 독백이 가득하였다. 약간의 수문을 열어주면, 엄청난 양의 물이 빠져나온다.. 그러다 보니 몇몇의 물줄기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흘러갔다.

" 그런데요. 저는 지금 제가 동정받고 싶어 하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정말 동정심을 위해 자기 연민하는 사람인 것일까요? 사실은 제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타인에게는 그저 그런 일들 중 하나일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같은 것일까 두려워요. "

상담사는 약간의 입을 벌린 체 호응했다. 내 말을 듣고 있다는 단순한 반응이었을지, 정말로 그녀가 놀란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꺼내본 나의 지독한 속마음이 부끄러웠다.

첫 상담 이후 검사지를 받았다. 검사지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가득했다. 스스로 한 번쯤 했던 질문도 있었고, 답변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생각지 못한 질문들도 있었다. 나는 그 질문지에 답을 작성하면서도,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몇몇 질문에는, 5번 (자주 그렇다)를 체크하려다가도, 3번 (종종 그렇다)를 체크하기도 했다. 나만 아는 거짓에, 나만 부끄러웠다. 그것 또한 외로웠다.

검사 결과를 듣기 전, 상담사는 의외의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나의 걱정에 대한 결과가 상담 결과지로 나온다는 것이다. 다행히, 걱정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정말 힘들었고, 우울했던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댐이 넘치게 흘러내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결과지에 '내적소외감'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 점수가 기존치 와는 달랐고, 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 봄 씨가 느꼈던, 당신의 마음 안에서 떠오르던 그 문장들을 나타내는 척도예요. 내 안에서, 나의 감정을 소외시켰다는 뜻이죠.'

이번엔 반대로 내가 입을 턱 하고 벌렸다. 상담사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면, 그녀도 내 말에 놀랐던 것이다.


내적 소외감. 내 마음 안에서 느껴지는 소외감. 이 얼마나 슬픈 단어인 것인가. 나를 외롭게 만드는 원인은 결국 내 안에서 있었다. 그리고 인정해주지 않는,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나는

난생처음,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은, 유년기 시절 공감받지 못한 노력에서 비롯되고는 한다. 성취, 아픔,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 벽에 던졌다. 더 큰 힘으로 돌아온 감정에 나의 댐에 금이 갔던 것이다.

엄마에게 들었던 말들 때문일까? 어린 나는 종종, 일에 지쳐 퇴근한 엄마에게 " 엄마 힘든 거 다 이해해."라고 했다. 술에 취한 엄마는 네가 뭘 아냐며 나의 이해를 받아쳤다. 그때의 멍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기질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것도 있다고 상담사는 말했다. 과거가 악화시키기도 하였지만, 종국에는 내가 나의 감정을 외면시켰기에 일어난 사단이었다.


후로 나는 내 안의 의문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다면 힘든 것이고, 내가 서글프다면 그저 서글픈 것이다. 남에 대한 분노 등 그것이 행동으로 나오면 문제가 되지만, 스스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다루기도 전에, 부정한다면 그 감정은 갈 곳을 잃고 물처럼 어디론가 계속 흘러간다. 증발되기 위한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자는 몇몇 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신경이 곤두선다. 외적으로 가장 크게 남아있다.

몸이 아파 먹는 약도, 시간을 두고 투여해야 효과가 난다. 마음을 위한 처방 또한 그렇다. 스스로에게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치료해주어야 한다.

외적인 것은 두고 내적인 나는, 타인과 결여되게 생각 중이다. 소시오패스 같은 마인드 세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평생을 마스크를 끼고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인간관계에 지치는 당신에게, 스스로와의 대화를 권유하고 싶다. 상담사처럼 말이다. 결과를 내기보단 우선 그저 공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타이르듯이.

잘잘못이 있다한들, 감정을 공감받은 후에 따져도 전혀 늦지 않다. 나와의 따뜻한 대화를 가지며, 스스로의 감정의 댐을 보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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