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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Sep 16. 2023

받기만 하는 고양이

온전히 주고, 마음껏 받는 마음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3-4라인 입구에 경비묘가 생겼다. 누구도 쫓지 않으니, 경비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지 헷갈리는 길고양이다. 그럼에도 드나들 때마다 옆에서 싸늘하고 경계심 강한 눈으로 나를 향해있는 묘안의 시선이 느껴져서, 어쩐지 들어갈 때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들어가게 되니 경비는 경비다. 진짜 주민을 향한 경비라는 게 조금 문제지만. 내 집 들어가면서 눈치를 봐야 하다니! …하지만 고양이가 그러라면 그래야지.     


 시작은 1층 주민분이 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부터다. 그녀는 햇반 통을 깨끗하게 씻어 고양이 사료를 채우고 입구 옆 화단에 놔두었다. 살뜰하게 물통까지 함께 놓았다. 고양이는 느긋하게 그 옆에 식빵 굽는 자세로 엎드려 밥을 먹거나 일광욕을 했다. 보통 밥만 먹고 자리를 뜨는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는 거의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 자리에서 보냈다.


 그 장소가 고양이의 장소가 된 것을 알자, 다른 주민들도 은밀하게 그 보살핌에 동참했다. 입구 쪽에 차를 주차하는 이들은 화단에 차를 너무 붙이지 않고 주차를 했서 제법 널찍한 공간을 남겨주었다. 고양이가 지낸다고 하면 지내야지. 다 맞춰주겠다는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듯해서 그 공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물론 마음을 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그 고양이는 절대 사람에게 애정을 주는 법이 없었다.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고,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낌새가 보이면 후다닥 차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두운 차 밑에서 얼굴을 낮추고 사람을 날카롭게 올려보았다. 심지어 제 밥을 챙겨주는 1층 주민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밥과 물을 받고, 땅(?)을 받고, 은밀한 애정을 받았다. 그 모든 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고마움이라고는 1도 없는 뻔뻔한 태도를 보고 있자면, … 고양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어쩌면 당연하다. 고양이는 애정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멋대로 애정을 주고는 상대의 마음을 요구하는 게 잘못된 거다.     


 아무도 그 고양이에게 ‘내가 이만큼 너에게 애정을 주었으니 나에게도 이만큼의 애정을 줘!’하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껏 그 아이를 애정하고, 슬며시 간식을 놓는 행위로 돌려받지 못할 고백을 한다. 받을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은 받는 존재도 주는 존재도 상쾌하다.    


 




 몇 년 전, TV를 보다 한 커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로 국적이 달라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거의 안 됐지만 얼마든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점점 서로의 언어를 익히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다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서로 주기만 하던 사랑에서 되돌림을 받길 원하는 마음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내 요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걸 안 들어주는 상대에게 서운해진 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최대한 고양이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끝에 붙어서 입구를 통과하며 생각했다. 완벽하게 일방적인 사랑이 어쩌면 진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온전히 주고,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마음. 어쩌면 사람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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