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앞선다는 것

by Sam의 기억 궁전


늘 그렇듯 근처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를 산다.

90엔.

너무 진하지도 않고 진부하게 익숙한 맛.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그 조그만 캔을 딸 때면 매번 비슷한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뭘 놓쳤지.

혹시 우리는 또 한 발 늦은 게 아닐까.

창업을 하고 나서부터는 시계보다 뉴스 알림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는지, 경쟁사가 어디에 투자받았는지,

시장에서 어떤 흐름이 감지되는지,

자꾸만 그런 정보들을 좇게 된다.



하지만 진짜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알람보다 먼저 움직이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이미 움직인 흔적이 보인다.

동네 고양이들이 비가 오기 전날 괜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듯, 그런 감각이 그들에겐 있다.



시간을 앞선다는 건 그렇게 특별한 재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민한 관찰력과 조금의 여유에서 나오는 결과일 때가 많다.

누구보다 빠르다기보다는, 누구보다 먼저 준비돼 있는 상태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 불편을 읽어내고,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곧 필요해질 것을 미리 만드는 능력.

이건 단순한 아이디어나 기술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각을 켜야 할지 아는 태도,

무심해 보이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눈과 귀를 열어두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점심시간에 식당 줄을 서며 나누는 대화,

고객의 메일 속에 담긴 반응 없는 문장 하나,

그런 사소한 조각들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깐 멈추고, 가만히 관찰하는 여유. 그 여유가 곧 방향이 된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말했다.

“진짜 좋은 서비스는, 누가 원한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거기 있더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결국 시간을 앞선다는 건 정답을 먼저 맞히는 게 아니라,

필요가 생기기도 전에 자리를 깔아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떤 건 너무 빨라 외면받고, 또 어떤 건 시대를 착각한 실수였다고 나중에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감각은 다듬어진다.

실패 속에서도, 다음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요즘은 시간이 흐른다기보다는 쌓인다고 느낀다.

관찰과 시도, 실패와 반복이 층층이 쌓이면서 각자만의 속도가 생긴다.

남들과 같은 시계를 쓰더라도, 그 시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같은 지점에 닿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 아무도 그 가치를 말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스스로는 확신이 드는 그런 순간.

그럴 땐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맞았다는 걸, 그제야 실감하게 된다.



하늘이 흐렸다.

바람도 없고, 구름도 얌전했다.

오후 일정이 밀려 있지만 잠깐 걸음을 늦췄다.

시간을 앞서간다는 건, 어떤 마법 같은 능력이 아니라 조금 더 집중해서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조용히 미래 앞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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