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구나.
9월 말에 첫째의 생일이 있었다. 생일 전 주에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미리 한 아이는 그때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일파티가 있는 날 아침 등원길부터 신이 나서는, 하원하고도 친구들이 전해준 생일 선물을 풀어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행복하게 생일선물을 풀어보고는 공원에 놀러 갔는데,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이 난 마음을 쉽사리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날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라 두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했는데, 평소와 달리 너무 흥분해 있는 첫째에게 내가 진정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을 정도였다. ‘HAPPY BIRTHDAY’라고 쓰인 머리띠를 쓰고 식당에 간 터라, 생일임을 눈치챈 직원분이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케이크를 디저트로 내어주시기까지 했다. 그 머리띠 덕분에 아이는 어딜 가도 축하를 받았고, 그렇게 쉽사리 진정할 수 없는 4일 보내고 드디어 진짜 생일날이 되었다. 나는 집에다가 첫째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풍선 포토존을 만들어 주었고, (케이크에도 그 캐릭터 피규어를 얹어 준비했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이모네까지 모두 초대해 즐거운 생일 파티를 했다. 생일카드, 편지, 선물들에 아이는 너무너무 신나 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다 싶었다. 나까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가을이 만큼 생일이 기쁘지 않은 걸까? 내 생일도 첫째와 같은 9월에 있다. 즉, 나도 얼마 전에 생일이었는데, 나는 저렇게까지 신나지는 않았었다. 저렇게 몇 날 며칠 흥분을 감추지 못할 만큼 설레고 신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아이처럼 그렇게 신나고 싶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월 초 우리 가족은 (친정식구들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분명 신나는 여행길인데,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이 둘 과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부담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면 어쩌지? 무얼 챙겨가야 하지? 가서 아이들이 아프면 어쩌지?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쩌지? 이것도 챙겨가야 하나? 하나하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여행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식사 자리에서, 나는 남편에게 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지나가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자 첫째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여행 가는 건 즐거운 거 아니야? 가서 바다도 보고 수영도 할 거잖아!” 맞아… 맞는 얘긴데… 나는 이런저런 걱정들에 그 즐거움을, 설렘을, 기쁨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왜 같이 여행을 가는데, 나보다 네가 더 즐겁고 기쁠까? 그건 어린이의 특권일까? 왜 나는 즐겁기보단 걱정이 앞서는 것일까?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인 걸까? 그러다 문득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어떤 ‘릴스’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의 뇌는 항상 증거를 찾아요. 내가 믿는 것들이 맞다는 것을요. 만약 당신 마음속의 이야기가 인생이 X 같고 잘되는 게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뇌는 그 정보를 딱 골라서 받아들여요. 그 생각이 맞다고 확인시켜줄 것을요. 그래서 사람들이 ”방법이 있을 거야 “, ”더 나아질 수 있어 “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 실제로 그렇게 되기 시작하죠. 왜냐하면 뇌는 증거를 찾기 시작하니까요. 그게 맞다는 증거를요. 바로 확증편향이라는 겁니다. 꼭 부정적인 단어는 아닙니다. 당신이 좋은 것들을 믿으면 우리의 뇌는 좋은 것들만 받아들여요. 그리고 삶은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뇌는 단지 자기의 역할을 할 뿐이에요. 늘 증거를 찾는 거죠. 내가 믿는 현실이 맞다는 증거를요. 그러니 어떤 현실을 믿을지 의도적으로 골라보세요.”
뇌의 확증편향. 즉 한마디로 하자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당연하고 흔한 말이다.) 즐겁고 기쁘기 위해서는, 내가 기쁘기를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일이건 여행이건 아이와 비교해서 내가 준비해야할 것이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라기보다 내 생일이건 네 생일이건 다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긴 하다…) 고로 걱정도 염려도 어른인 나의 몫이기에 내가 아이보다 덜 기쁜 것이 당연한 것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가 기쁘기를 선택하면 더 기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나도 기뻐하기를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과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내가 기쁘기를 선택하면 나의 뇌는 내가 기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증거들로 인해서 더 기쁘게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똑같이 생일을 맞이해도, 똑같이 여행을 가도 나보다 더 즐겁고 기쁜 너는 “생일이 기대된다. 여행 가서 바다를 볼 생각에 설렌다. 수영을 실컷 할 수 있어서 신난다. 오키나와에서 100 밤 더 자고 싶다. 행복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했다. 둘째도 여행 가서 이런 말들을 했다. “엄마는 예뻐, 비가 와도 괜찮아, 나 라이트닝 맥퀸처럼 빠르지?, 택시 예쁘다.” 다 모두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말들이다. 그 순간 아이들은 기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선택들 덕분에 아이들의 현실은 그 믿음대로 정말 기쁘게 되는 것이다. 여행에 가서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와도 아이는 그런 날씨마저 괜찮다고 여기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 덕분에 아이는 기뻤다.
이렇게 또 나는 아이들을 통해, 너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배운다. 너희들 덕분에 나도 앞으로는 조금 더 기쁘고 즐거워질 것 같다. 내가 그러기를 더 많이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너희들처럼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고마워 가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