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성실 Mar 21. 2018

영화나눔

목소리의 형태

점점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면서 관계맺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저 마을에 살면 누구나 관계맺고 살 수 있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학교라는 곳은 학생들에게 배운 것 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홀로 책임져야하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속에서 어찌됐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남아야 하기에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일방적인 관계맺음이 관철되기를 바랍니다.

이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모르거나 낼 수 없는 존재는 그야말로 남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못하게 되면 누구의 목소리도 따라갈 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어중간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특히나 남과 다른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면 어지간한 노력이 아니고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니시미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필담을 하기도 하고 수화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묻힐까봐 두려워하는 쇼야나 우에다는 니시미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여기에 어중간한 위치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그저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가기만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니시미야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저 상황이 그런 것뿐입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목소리만 내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관계는 받아줄 수 있어야 시작이 됩니다. 소통도 먼저 받아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은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나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