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
한 사람이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지식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른 누군가의 뇌리 속에 박힌다.
그 누군가는 또 다른 이에게 습득한 지식을 말해준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더라도 상관없다.
책, TV,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그 사람의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들이 생겨나 미디어를 통해 지구 곳곳으로 퍼진다. 어떤 이에게 지목받은 사람들은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기도 하고(Ice Bucket Challenge), 몇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정지 상태가 되기도 한다(mannequin challenge). 유명 연예인의 삼촌이 자주 쓴다던 ‘히트다 히트’는 전 국민이 한 번쯤 따라 하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고, 누가 퍼뜨렸는지 초등학생들도 자괴감이 든단다.
인간의 행동이나 말이 어떻게 사람들이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냈고 널리 퍼질 수 있었을까?
단순히 자극적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고, 공감되지 못하여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되다 잊혀지기 십상이다.
아니면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 때문인 걸까? 물론 인터넷의 발달이 유행과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퍼지도록 하는 강력한 도구의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어렸을 적을 떠올려 보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편을 나누는 당신은 무슨 구호를 외쳤는가? 서울은 “데덴찌”, 부산은 “젠디”, 전라도 광주는 “편 뽑기 편 뽑기 장끼르세요. 알코르세요.”로 지역마다 전부 다른 구호를 외친다. 마을 게시판에 붙이거나 법으로 정한 거도 아닌데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똑같은 구호를 외친다.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민요들은 대부분 악보나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채 구비전승에 의해 내려왔다.
예나 지금이나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문화를 만들어내고 따라 하고 스스로 변형시킨다.
우리는 문화의 변형과 복제가 이루어지는
밈(meme)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밈(meme)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인간의 신체적 하드웨어 요소를 복제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유전자(gene)로 보았을 때 소프트웨어적인 문화, 지식 등을 복제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밈(meme)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밈이라 하면 유행어, 짤방 정도로 생각하지만, 앞서 언급한 데로 밈은 아이스버킷 챌린지, 마네킹 챌린지 같은 문화 트렌드부터, 민요나 구전동화 같은 무형문화유산 또는 노래, 유행어, 입고 있는 옷, 사상이나 의식, 종교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거의 모든 문화현상들이 밈의 범위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문화와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지금, 밈이 되기 위한 조건과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다.
어떤 콘텐츠가 만들어져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밈이 될 수 없다. 그렇기 위해서는 참여하고 따라 하기가 쉬워야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쉽고 단순하면서 재밌는 안무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나 ‘마네킹 챌린지’는 물 바가지를 뒤집어쓰거나, 가만히 멈춰있으면 됐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밈에 직접 참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형태가 더 발전하면서 ‘자발적 참여’는 밈의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복제하고 변이 하면서 새로운 밈을 만들어 낸다.
밈(meme)의 어원인 그리스어 ‘미메메(mimeme)’에는 ‘모방’의 뜻이 들어있다. 모방은 어떠한 것을 따라 하고 재현하는 것으로 창조와는 반대의 의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민요 ‘아리랑’을 예로 들어보자.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아리랑은 구비전승되어 오면서 수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아리랑을 만들었고, 동네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줬을 것이다. 노래를 들은 친구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었을 것이고, 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반복되었다. 강원도 정선지역에서 아리랑을 들은 한 사람은 흥얼거리면서 경상남도 밀양으로 갔지만 완벽하게 기억나지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정선에서 들었던 아리랑을 변형시켜 밀양아리랑을 만들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짧은 시간에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건 필수적이다. 앞서 말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 스스로 따라 하고 새로운 밈으로 파생시키는 건 모두 매력적이라는 게 전제로 깔려야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매력적’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주관적이고 애매하다. 밈의 관점에서 ‘매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유머’를 제공하여 보는 이를 피식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짧고 직설적이어서 이해가 빠르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 밈’의 짤방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에 재치 있는 글이 더해진 짤방은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임팩트 있다. 길라임 퇴진, 우주의 기운 등의 정치를 풍자한 짤방이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어 공유되기도 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또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광고, 마케팅 등 홍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나온 자신들의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트렌드를 분석하고 소비자를 만나고 아이디어 회의에 야근까지. 물론 성공적으로 고객들에게 홍보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맴도는 짤, 유행어 등의 밈을 보자. 앞서 말한 밈의 특징은 있지만 밈이 되기 위한 큰 노력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마케팅에 밈의 특징과 요소를 접목시키면 좀 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지 않을까?
#1
2012년 인텔은 도시바와 함께 브랜드 슬로건인 ‘inel inside’ 캠페인을 공동 제작하였다.
그들은 인텔 칩이 내장된 노트북은 기종이 다르더라도 성능이 우수하다. 즉, ‘내면이 중요하다’를 말하고 싶었다. 매일 나이, 성별, 얼굴이 변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beauty inside(내면의 아름다움)’라는 로맨스 영화를 기획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주인공이 되어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참가는 페이스북 오디션을 통해 이루어졌고, 오디션의 대본에 따라 사용자가 직접 영상 다이어리를 제작해 업로드하면 됐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었고 참여방법이 쉬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를 했다. 대본은 있었지만 각자의 개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영상이 올라왔다.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와 변형으로 완성되는 밈의 특징을 살린 이 캠페인은 유튜브 조회 수 7,000만 뷰를 달성했고, 9만 6천 명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을 수 있었다. 또 intel과 도시바의 브랜드 인지도는 각각 66%, 40% 상승하였고 이벤트 기간 중 판매량이 300% 상승하는 성과를 달성하였다.
intel의 브랜드 슬로건인 ‘intel inside’와 밈의 특징을 잘 녹여낸 성공 사례이다.
#2
두 번째 사례는 2012년 호주 광고 대행사 매켄 멜버른이 고안한 ‘Dumb Ways to Die(멍청하게 죽는 방법)’이다. 멜버른 지하철 공사의 공익광고인 이 애니메이션은 멍청하게 죽는 여러 방법을 귀여운 캐릭터와 사랑스러운 멜로디로 그려냈다. 그리즐리 베어 막대기로 찌르기, 포크로 토스트 꺼내기, 머리에 불지르기 등의 죽는 방법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승강장 끝에 서기, 건널목 차단기 내려갔을 때 건너기, 승강장 사이 선로 건너기 같은 철도와 관련된 죽는 방법이 나온다.
이 공익광고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방법들이지만 귀여운 캐릭터와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 때문인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아이튠즈에서 1위를 차지하고 200개 이상의 커버 버전이 제작되었다.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20만을 돌파하여 역사상 가장 많이 공유된 공익광고 영상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2013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5개 부문 그랑프리를 휩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철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20%를 감소시키는 본연의 GOAL을 달성하였다.
매켄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존 메스콜은 “이 캠페인의 목표는 안전과 관련된 어떤 내용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3
마지막 사례는 맥도널드를 대표하는 메뉴인 빅맥(BIG MAC)의 탄생 45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빅맥 송’ 캠페인이다. ‘빅맥 송’을 안 불러본 사람은 있어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라는 가사를 부른 영상을 빅맥 프랜드 페이지에 올리면 참가자 전원에게 빅맥 무료 쿠폰을 제공하는 캠페인이었다. 군인버전, 헬륨가스 버전, 판소리 버전 등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살려 동영상을 올렸다. 한 달만에 5천 개의 동영상이 올라왔고 조회수도 540만 건에 육박했다. 투표와 심사로 선정된 영상은 tv 광고에 활용되기도 했고 전년도 대비 21%가 더 팔렸다고 한다.
밈의 특징이 살아있는 마케팅이 어떤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었는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밈이 과연 사람들을 공감시킬 수 있을까? 그런 억지 밈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밈의 특징들을 잘 살려도 이슈화되고 마케팅에 성공하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밈의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시도해보려는 노력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이지 않을까?
epilogue..
새롭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그것을 알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거라 생각합니다.
밈이라는게 아직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개념이지만 이 글이 홍보업에 종사하는 크리에이터뿐만 아니라 이제 사업을 시작하려는 스타트업, 자신을 알릴 준비를 하는 취준생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BXRS | 안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