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그리고 말장난
비 오는 공휴일, 한글날이라 행복 지수가 넘친다.
연휴는 빨리 가고, 주중 근무일은 늦게 간다고들 한다.
몰랐는가? 연휴는 짧고 근무일은 길기 때문에 그런 것을.
주 5일, 주 40시간 근무라는 프레임에 맞춰 자신의 젊은 청춘과 피 같은 시간을
가족도 친척도 아닌 순전히 '남'의 회사를 위해 맞바꾸고 사는 직장인의 삶이
과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서로 평등한 거래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오후 6시, 땡 하면 10초 동안 컴퓨터를 끄고, 10초 동안 가방을 챙기고
나가는 MZ세대를 보며 팀장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왜 내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하지 않냐?'
돌아오는 답변은
'내 회사 아니잖아요? 저는 여기 직원인데요?'
시원한 사이다 같은 말이다.
내 회사처럼 일하면 내 회사가 되는가?
내 일처럼 일하면 나한테 수입이 돌아오는가?
그런 말을 하는 꼰대들도 결국 잘리면 갈데없는 영혼이라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사용자들이 피사용자들을 상대로 정신 교육까지 시켜가며 너무 혹독하게 빨아먹는
결과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나부터도 내 자식이 그 회사를 위해 죽어라고 일한다면 뜯어말릴 것이기에.
'품절' 대신 '물건 없음'으로 쓰자고 한다.
품절남은 '물건 없는 남자' 아니면 '남자 물건 없음'으로 써야 하는 건가?
기묘하게 들린다.
'택배' 대신 '집 배달'로 쓰자고 한다.
'과소비'는 일본어 '카쇼이(かしょうひ)'에서 온 일본어 잔재라며 '지나친 씀씀이'로 바꿔 부르자고 한다.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나라는 지배 민족의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 당연하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
인도, 몰디브,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피지, 투발루(이 4개의 나라들은 깃발에 영국 제국 시대의 국기 문양이 들어있다. 그렇다고 이 국기를 바꾸자고 하지 않는다. 국기를 바꾸지 않으면 애국자가 없는 나라일까?)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일본 잔재라며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부담감을 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과하다 싶게
일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간판 중에서 한글로 된 간판이 몇 개나 있는지 한 번 세어보자.
스타벅스
맘스터치
파리바게트
엔젤스 커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마트
컴퓨터
교육과정 로드맵
코스트코
블랙야크
마우스
리코끄
오리엔테이션
인덕션
95% 이상이 영어다.
영어를 사용하면 부담감이 없고 고급스럽고 잘나게 보이는 것인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미국스러운 잔재'라고 눈치를 주지는 않는 이유는 뭘까?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영어를 쓰던, 스페인어를 쓰던, 북한말을 쓰던, 일본말을 쓰던 쓰는 사람 자유 아닌가?
물론, 국립국어원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보존하고 다듬어 정체성을 찾고 후손들에게
널리 보급한다는 목표와 사명은 이해한다.
조선족,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방글라데시 등 우리나라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을 만들고 이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도록 여러 지원 사업을 제공해주면서도
이들에게 언어 사용에 대해 강제할 수 있을까?
이중적이다.
한글 사용 국가중 한글 사용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다.
가발 = 덧머리
날씨 = 날거리
덤핑 = 막 팔기
레프트윙 = 왼쪽 날개
마찰 = 쏠림
방수 = 물막이
산책로 = 거님길
애연가 = 담배질꾼
장인 = 가시 아버지
초등학교 = 소학교
커튼 = 창 가림막
통풍 = 바람 갈이
파고 = 물결 높이
한글날, 우리가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고급스럽게 보인다며 간판을 비롯한 일상의 거의 모든 단어가 영어이고
대학(원)에서 수업도 영어로 일정 비율을 하도록 강제하고
입사 서류에 토익이나 토플을 의무화하면서 국제화, 글로벌화를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한글화, 토착화된 단어에 대해서는 유난히 예민스럽고 까탈스럽게 군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사람들에겐 그 잣대를 들이밀지도 못하면서도
한글 사용을 강요한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 약어, 줄임말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새로운 말이 등장할 것이다.
언어가 갖고 있는 변화성 때문에.
우리 공방은 전통주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외국인들에게는 전통주를 영어로 강의하고
전통주에 관심 있는 한국인에게는 한글로 강의하고
수제와인이나 수제 맥주에 관심 있는 한국인에게는 외국 자료와 한국 자료를
적절하게 섞어서 제공하고 강의한다.
프레임이나 정해진 규칙 따위는 없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중요하지 어떤 단어를 쓰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