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게으름의 수의학] 운동도 쉬지 않으면 탈이 난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마냥 달리기만 하면 결국은 눕기 마련

by 삼삼한 수의사


요즘은 달리기가 완전히 대세다.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프로필 어디를 가도 “10km 몇 분 컷”, “오늘은 5km를 4~5분 페이스로 뛰었다”는 인증이 넘쳐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콘텐츠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참가비도 안 내고 몰래 뛰는 ‘뻐꾸기 러너’까지 등장했다. 언젠가 지나갈 유행이겠지만, 지금 한국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뛰고 있다. 나쁜 변화는 아니다. 사람들의 체력이 올라간다는 뜻이니까. 정말 한국인은 대단하다. 직장에서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하면서, 퇴근하고 또 뛴다. 나는? 정말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못한다.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무릎 통증과 저질적인 폐활량 덕분에 오래 뛰는 건 평생 어려웠다. 나에게 체력은 언제나 닿을 듯 말 듯한 무지개였다. 그러다 게으른 생활 습관 덕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러닝이었다. 처음 나는 1.5km 뛰고 1.5km 걷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에 1.5km를 뛸 수 있었을까? 아니다. 1km 뛰고 지쳐 걸었고, 마지막 500m를 억지로 뛰었다. 다음 날 무릎이 상해서 절뚝거리며 출근했다.


“역시 난 저질 체력이야. 나는 못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지방이 많으니 1달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꾸준히 한 달을 하니 3km는 쉬지 않고 뛰고, 3km는 걸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런 식으로 하면 내 무릎은 통증이 생겼지만, 1km 뛰고 바로 통증이 오던 시절을 생각하면 꽤 큰 발전이었다.


‘이러면 3개월 안에 10km도 쉬지 않고 뛰겠다’는 자신감이 슬쩍 생겼고, 그렇게 겨울로 접어드는 10월 말이 되었다. 그날은 이미 오전에 3km 러닝 + 3km 걷기를 했지만, 저녁에 밥을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또 뛰러 나갔다. 1.5km 뛰고 1.5km 걸었고, 집에 와서 땀을 닦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헛기침이 계속 나고 목이 간지러웠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왔다. 그렇게 나는 감기에 걸렸다.


다음 날부터 진짜 아팠다. 오한, 근육통, 목이 따가워 기침도 두려웠고 입맛도 없어 거의 먹지 못했다.
회복까지 7일이 걸렸다. 그 사이 의도치 않게 4kg이 빠졌다. 물론 체력도 원상복귀, 근력도 증발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십자인대가 아픈 강아지, 슬개골 탈구가 심해진 강아지, 살짝 다리가 삔 강아지들에게 7일 동안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처방하면서 정작 내 몸은 돌보지 않고 추운 날씨에 욕심내서 뛰다가 몸살이 난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수영 4km, 사이클 180km, 거기에 마라톤까지 완주하는 중년들도 있다. 그들을 보며 “왜 나는 이들의 발끝도 못 따라갈까?”라고 나를 비교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이거다.

나는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 일뿐이다.


내 몸은 지금 ‘쉼’이 필요했고, 때로는 ‘게으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재는 루틴을 바꿨다. 추운 겨울엔 밖에서 뛰지 않는다. 실내에서 천천히, 내 호흡에 맞춰 뛴다. 누가 옆에서 얼마나 잘 뛰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을 따라 하면 내가 눕는다. 20분 정도만 뛰어도 면역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면 러닝과 걷기를 번갈아 한다. 달리는 중간에도 쉬고, 너무 힘들면 멈춘다. 억지로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쓰러지는 것보다, 가끔 게으를 줄 아는 용기가 나에게 더 필요했다. 남들보다 느리고 뒤처진다고 억지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가장 먼저 누워버리는 건 나다. 게으름은 때때로, 나를 살리는 기술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게으름의 수의학]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