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줌마는 수치심이 없다?

육아 심리 에세이_《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

by 콜룸바


"나는 이기주의자는 아니야. 철저한 개인주의자일 뿐. 방해받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방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자랑도 아니지만 굳이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내 삶의 모토가 한순간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들이 태어나고 육아를 하면서부터다.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개인주의(個人主義, Individualism)는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도덕적 입장, 이데올로기, 정치철학, 사회적 시각 등을 의미한다. 개인주의자는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행사하는 것을 촉진하며, 따라서 개인의 독립과 자립에 가치를 두고 개인의 이익이 국가나 사회집단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기주의(利己主義, Egoism)는 남이나 사회 일반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만의 이익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나 태도. 이타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두 단어는 혼용되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나는 언제나 평화를 지향하는 개인주의자였음을 명확히 하겠다.




사설은 제쳐두고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버스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방부터 던지거나, 마감 세일 직전 눈에 핏발을 세우고 돌진하는 모습들, 대게 아줌마는 억세고,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이가 없던 시절, 그저 '유부녀'라는 타이틀만 갖고 살았을 때는 나 역시 그런 모습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그들의 모습은 '빌런'이 아니라 그저 살아내기 위해, 잘 버티기 위한 발버둥이 뻔뻔함과 억척스러움이라는 결과물로 비치게 됐다는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다.


싱글의 여유를 누리며 살던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짜증을 내며 아이를 혼내는 엄마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들을 100%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엄마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게 됐다.


아이와 처음 외출했을 때, 나는 '착한 엄마'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 잘못을 해도 웃어넘기고, 떼를 부리면 들어주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쌓였던 감정이 터져버리며 더 큰 후폭풍을 맞게 됐고, 그제야 깨달았다.

그건 아이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삶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고성을 지르지 않더라도 "그건 안돼!"라고 사람들에서 단호히 말할 줄 아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의 떼짜증에 흔들리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개인주의에 회피형 인간이었던 내게, 이 변화는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나 같은 유형의 '엄마'라면 평생 달고 다녀야 스트레스 중 하나가 '늘 사과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의도치 않게 무언가를 망가뜨리거나,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다투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긁히면 나는 "미안해요"라는 말을. 지금껏 살아오며 했던 횟수보다 더 자주 꺼내야 했다.


살면서 미안할 일도, 굳이 사과할 일도 만들지 않았던 내가! 내 아이로 인해 항상 죄인의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는 일은 단단한 시멘트 벽을 맨손으로 부수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아이도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이듯,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살아왔던 똑같은 세상인에도 전혀 다른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엄마는 사춘기도 아닌 '패닉'에 빠지게 된다. 인생의 또 다른 변곡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난 이를 '모춘기(母春期)'라 칭하기로 했다.


유치원을 등하원길마다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아이 친구 엄마들과 관계를 맺으며, 크고 작은 사건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마치 거친 원석이 세공되듯 단련되어 간다.


주변의 눈을 신경 쓸 에너지도, 체면을 세울 여유도 없다. 그저 오늘을 버티고 아이와 함께 살아내는 것뿐이다.




ⓒ 2025. 이미지 제작: ChatGPT


사람들은 '아줌마'가 뻔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뻔뻔함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생존 방식이다. 체면 따위 내려놓아야만 아이를 지킬 수 있고, 타인의 평가보다 아이의 안전과 성장을 우선해야 하기에 수치심을 무장 해제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시 태어나는 '모춘기'를 지나며, 나는 안다. 아줌마는 수치심이 없는 게 아니라, 수치심마저 내려놓을 만큼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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