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간 서른 도시, 서유럽 대륙을 횡단한 두 남자의 여행기 #30
유럽 여행 13일차, 약 3,000km를 순수 달려 서유럽의 중심지 파리에 입성했다. 초이 형과 내가 파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저녁이었다. 식사를 해야 했던 우리는 그동안 여행한다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한식을 먹기로 했다. 몽펠리에에서 한식당을 방문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4년차 프랑스 유학생이었던 초이 형은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북한식당 ‘Morann’를 소개해줬다. 국내에선 북한은 가깝고도 먼 곳이지만, 해외에선 멀고도 가까운 곳이었다. 프랑스에선 북한 사람이든, 대한민국 사람이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옆 테이블엔 한국 분들이 계셨고, 뒤 테이블엔 북한 분들이 계셨다. 그들은 단지 우리 입맛에 맞는 한식을 먹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초이 형은 식당에 들어서자 옆 테이블과 반갑게 인사했다. 3주 전 여행을 떠났다가 이제 막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곤 나랑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메뉴판만 봐도 향수가 절로 느껴졌다. 각종 국밥 메뉴와 지짐, 그리고 순대 등 너무 익숙한 메뉴들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평양 냉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살면서 북한 식당은 처음이었고, 소문으로만 들은 평양 냉면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초이 형은 아바이 순대국을 시킨 뒤 사이드로 연갑게 튀김요리도 곁들였다. 평양 냉면을 처음 맛본 나는 그제서야 그 소문의 밍밍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우리의 맛에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연갑게 튀김요리도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느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폭풍의 젓가락질은 계속됐다.
그렇게 식사를 한참 마무리해 갈 때쯤 우리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에세이 <동거 식물>의 저자 김은진 작가님 이셨다. 정확히는 초이 형의 손님으로 함께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파리 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하셨다. 우리도 늦은 저녁이라 먼저 식사를 시작했지만 작가님이 오시고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 주제는 ‘좋은 글쓰기와 마케팅은 양립될 수 있는가?’였다.
종종 좋은 글을 쓴다고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게 평범한 일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어주는 책은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백권의 책들 중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이왕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했으니 책으로써 기능을 다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눈에 띄지 않거나 서점 책장에나 꽂혀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처럼 여행기가 될 수도 있고, 앞으로는 지금껏 내가 깨우친 것들을 정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일의 도구로 글쓰기를 사용하고 싶다. 그 의지는 아마 마케팅과 상관없이 나의 가장 순수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라고 여행 당시에나 지금에나 변함이 없다. 나에게 김은진 작가님과 만남은 ‘나의 글쓰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작가님께서 사인하신 책을 선물로 받았다. 파리에서 몇 권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을 선물해주신 것에 대해 매우 감사했다.
초이 형은 작가님을 집에 모셔드리고 내게 속성으로 파리의 밤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파리 야간 속성 투어에 함께할 친구로 루마니아 유학생인 T도 동행했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못하는 나는 T와 의사소통에 조금 불편함을 겪었지만, T는 밤늦은 시간에도 우리와 동행하여 사진을 찍어주었다.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초이 형은 늦은 밤 푸조 308의 핸들을 붙잡고 파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 3가지를 내게 보여주려고 말이다. 우리는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속성 투어였기 때문에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에선 인증 사진만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에펠탑만 가장 오랜 시간 관람할 수 있었다. 먼저, 에펠탑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를 방문했다. 야간의 에펠탑은 태양빛을 닮은 불기둥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그 곳에서 제대로 인증 사진을 남긴 우리는 에펠탑 아래까지 이동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수많은 인파들이 에펠탑을 서성이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소의 위상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화이트 에펠을 기다리기 위해 맞은 편 공원으로 이동했다. 대략 30분가량을 공원 벤치에서 기다렸는데 반팔을 입고 있던 나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어제만해도 유럽 전역에 북상한 사하라 사막 열기로 인해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당장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폭염이 지나가고 제 날씨를 되찾은 파리의 새벽은 무척이나 추웠던 것이다. 나는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내일 모레 귀국하려고 하니까 날씨가 풀리냐?”고 툴툴거렸다. 초이 형은 그런 나를 보며 “너무 추우면 돌아갈까?” 물어봤지만, 나는 “아니, 여기까지 왔으니 화이트 에펠은 무조건 보고 가야 돼.”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초이 형은 껄껄 웃으며 “이거라도 덮어.”라면서 자신의 가방을 넘겨줬다. 처음엔 가방을 덮는다고 덜 추울까 의심스러웠지만, 실제로 가방이라도 덮으니 덜 추웠다. 나는 가방의 새로운 기능에 의외로 놀랬다. 결국 초이 형과 나, 그리고 친구 T는 새벽 1시까지 기다려 화이트 에펠을 관람하고 귀가했다.
친구 T는 파리에서 헤어지고, 나는 초이 형의 집인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처음엔 3주만에 집으로 돌아온 초이 형이 대문 비밀번호를 까먹은 바람에 그대로 밖에서 밤을 셀 뻔했다. 다행이도 1층의 집주인이 늦은 시간까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있었기에 무사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여행이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웃어 댔다. 뒷정리를 마친 우리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