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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U Aug 25. 2020

프랑스에서 언덕 맛집이라는 그르노블과 리옹

15일간 서른 도시, 서유럽 대륙을 횡단한 두 남자의 여행기 #27

보랏빛 라벤더 밭이 가득한 발랑솔을 지나 그르노블로 향했다. 알프스 산맥을 따라 오르는 길은 꽤 길었는데, 시스테론, 세흐, 렐리 등 북 알프스를 대표하는 마을들을 하나씩 지나왔다. 그렇게 3시간쯤 달렸을까? 우리의 목적지인 그르노블에 도착했다. 알프스의 심장이라고도 부르는 그르노블은 고대부터 도시의 역할을 해왔다. 19세기부터 공업이 발달하여 현재까지도 유럽 내 과학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1339년에는 종합대학을 설립하여 대학의 도시로 거듭났는데, 우리나라의 전직 퍼스트레이디와 제18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에 이 곳에서 유학을 했다. 게다가 소설 <적과 흑>으로 유명한 ‘스탕달’을 배출한 도시이다. 이 곳에서 태어난 스탕달의 박물관은 당연히 그르노블에 위치해 있다. 스탕달 원고의 대부분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박물관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주말이었고 늦은 시간이어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쉬운 대로 박물관 입구 앞에 서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초이 형과 나는 그르노블에 도착하자 마자 일단 밥을 먹기로 했다. 어느 새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이 형도 장시간 운전에 아마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그 동안 양식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아시아 음식이 생각나 태국 음식점을 찾았다. ‘Sunset Boulevard’이라는 식당으로 태국 느낌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닭고기 크림 스프와 해물 토마토 스프를 시켰다. 사이드로는 춘권을 주문했다. 따뜻하고 매콤한 스프와 함께 쌀밥을 오랜만에 먹으니 몸이 풀리고 위장이 반가워하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달콤한 푸딩도 디저트로 나왔다. 초이 형과 나는 그르노블에서 우연치 않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다시 그르노블로 나서 걷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걷던 우리는 ‘썽떵드헤 광장’에 도착했다. 인근 카페 테라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초이 형과 나는 광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15세기 기사 조각상과 ‘앤드류 스덴 교회’를 마주했다. 두 인조물 모두 좁은 광장에서 더 넓은 하늘을 항해 솟아 있었다. 이 광장을 지나면 그르노블을 가로지르는 이제르 강을 만날 수 있었다. 강 맞은 편엔 그르노블을 대표하는 바스티유 요새가 보였고, 그 곳으로 오르기 위한 케이블카가 운행 중이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뒤로 하고 강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빌르가든 앞도 지나갔다. 하루일과가 끝나고 저녁 노을이 붉게 내려앉고 있었던 터라 많은 사람들이 가든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자연스러운 모습에 조금은 부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화려한 네온사인 속 술집으로 모여드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 속 정원이나 가든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같은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모습을 취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와 닿는다고 생각했다.


차로 돌아온 우리는 푸조 308을 타고 바르티유 요새에 오르기로 했다. 바르티유 요새는 상당히 넓었다. 주차장도 넓었고, 케이블카 정류장과 식당도 있었다. 게다가 동굴로 이어진 길들을 따라가면 요새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차장에서부터 동굴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이제르 강과 강 너머의 그르노블 도시, 그리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을은 알프스 산맥 아래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르노블 도시는 별빛을 닮은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면서 도시를 채워 나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유럽 여행 중 매일같이 봤던 노을이었지만, 그르노블 노을만큼 가장 아름다운 노을은 없었다. 그렇게 그르노블은 나에게 노을의 도시로 기억됐다.

그러나 우리의 숙소는 그르노블이 아닌 리옹에 있었다. 노을 구경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그르노블을 떠날 수 있었다. 프랑스 대륙 밤길을 1시간 정도 달려 리옹에 도착한 우리는 유료주차장에 안전하게 차를 맡기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매우 깔끔한 오피스텔이었는데 에어컨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프랑스 여행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에어컨이었다. 여행 당시 사하라 사막 열기가 유럽 대륙을 덮치는 바람에 무더운 날씨와 열대야가 지속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선 일반 가정집에 에어컨 설치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숙소를 가도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 한 대로 버텨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리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는 너무 좋은데 열대야를 버텨 숙면을 취할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초이 형은 “차라리 이러면 차에서 에어컨을 틀고 자는 게 낫겠다”며 내게 말했다. 나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리옹의 밤거리로 나서 보기로 했다. 드라이브라도 한다면 최소 에어컨 바람이라도 쐴 수 있기 때문이다. 리옹의 늦은 밤거리에는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만은 아니었다. 많은 리옹 시민들이 잠 못 드는 밤을 거리에서 보내고 있었다. 정말 기억에 남는 풍경이 하나 있는데, 어떤 젊은 남성이 상의를 탈의한 채 전동휠을 타고 달리는 모습도 보았다. 그만큼 더운 밤이었다. 우리도 새벽 2시나 되어서 다시 숙소로 들어왔고, 샤워를 마친 후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리옹에서 맞이한 아침은 6월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이었다. 초이 형은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초이 형은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밖에 나와 보니 삼겹살을 굽는데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아 화재경보기가 울린 것이었다. 우리는 당황하여 경보기를 어떻게 끌 수 있는지 방법을 찾다가 경보기를 눌러 보기로 했다. 벽 꼭대기에 붙어 있던 경보기를 폴짝 뛰어올라 터치했다. 그러자 한참을 시끄럽게 울리던 사이렌 소리는 완벽히 사라졌다. 큰 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주변 시민들이나 현지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프닝을 하나 처리한 우리는 삼겹살 구이에 발사믹 소스를 얹은 샐러드를 곁들어 먹었다. 한 순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 겁을 먹었음에도 한 편으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초이 형이 샤워를 하는 동안 내가 설거지를 했다. 정리가 끝난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서 리옹을 둘러보기로 했다.


리옹은 참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먼저 리옹은 ‘손’ 강과 ‘론’ 강이 만나는 도시로 두 강 사이에는 ‘벨꾸르 광장’이 위치해 있다. 광장 입구에서는 작가 ‘생텍쥐베리’와 어린왕자 동상을 만날 수 있으며, 광장 한 가운데서는 말을 타고 있는 루이 14세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손 강을 건너 비유 리옹 지구로 진입할 수 있는데 각종 카페와 다양한 문화 공간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우리도 비유 리옹 지구에서 시네마 박물관을 방문하여 관람했다. 유명한 영화들을 위주로 캐릭터들의 밀랍 인형과 영화 배경 미니어처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비유 리옹 지구 뒤로는 ‘노트르담 드 푸르비예르 대성당’이 언덕 위로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언덕의 높이만 175m라고 한다. 성당은 성모의 무원죄 잉태를 기념하여 1872년부터 지어졌으며, 로만 비잔틴 양식을 띄고 있다. 성당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 화려한 금박 장식들로 꾸며져 있어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성당이 위치한 푸르비예르 언덕은 리옹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리옹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 매김했다. 초이 형과 나도 화려한 성당을 둘러보고 언덕 전망대에서 리옹을 바라보면서 리옹이 얼마나 크고 넓은 도시인지 새삼 경험할 수 있었다.

성당과 멀지 않은 위치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을 감상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 경기장이 있었고, 손 강과 론 강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껑플루엉스 박물관이라는 현대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의 DDP를 설계한 그 건축가와 동일 인물이다. 마침 박물관 뒤쪽에는 그늘 아래로 낮고 넓은 분수대가 만들어져 있어 뜨거운 햇살을 피해 족욕을 즐길 수 있었다. 만약 껑플루엉스 박물관으로 도피하지 않았다면 더위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또 박물관 옆에는 ‘#ONLYLYON”이라는 조형물이 있어 인증 사진을 하나 남기고 리옹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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