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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U Aug 27. 2020

하마터면 유럽 여행도 못 가보고 20대가 끝날 뻔했다

15일간 서른 도시, 서유럽 대륙을 횡단한 두 남자의 여행기 #에필로그

프랑스 파리에서 부엘링 항공을 타고 바르셀로나 국제 공항에 도착한 나는 대한 항공으로 환승하여 귀국했다. 인천으로 오는 내내 영화를 2편이나 봤고, 인천에 도착해서 얼큰한 순두부 찌개를 가장 먼저 먹었다. 빨간 국물에 하얀 순두부를 한 숟가락 뜨면서 정말 유럽 여행이 끝났다고 느꼈다. 


그 순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는 게 꿈만 같았다. 10대에는 대학생이 되면 유럽 여행을 갈 줄 알았다. 그 때의 나에겐 당연한 낭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학점 전쟁과 취업 걱정으로 가득 찬 대학 생활을 보냈다. 취업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회사만 전전하면서 월세와 생활비를 간신히 충당했다. 분명 과거에 비해서 유럽 여행은 쉬워졌고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처럼 멀어지는 꿈으로 두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았다. 나 혼자였더라면 어릴 적 꿈꾸던 유럽 여행을 가지 못했다. 특히, 20대 안에 말이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 새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었겠지. 그랬더라면 나의 20대를 기억할 때 어쩌면 나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30대나 40대가 오더라도 20대는 단 한 번이니까 말이다. 다행이도 내 옆엔 초이 형이나 상이 형처럼 멋진 인생 선배들이 먼저 이끌어주고 같이 걸어준다. 만약 두 형이 아니었더라면 나의 첫 유럽여행은 20대에 일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1년 사이에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표현이 생겨나고, 그와 동시에 해외 여행은 어려워졌다. 여전히 친구들과 가보고 싶은 해외 여행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앞으로 진짜 갈 수 있을지는 항상 의구심을 품는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유럽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기회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나 개인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볼 때, 20대가 끝나지 않고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코로나 19가 불러온 코로나 블루 속에서 해외 여행기를 써내려 간다는 게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만약 이것이 코로나 19로 인한 마지막 해외 여행이 되어버린다면 코로나 시대 이전의 해외 여행이라는 이유로 기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혹여 이 여행기 그 자체가 “라떼는 말이야”가 될 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인류가 항상 그래왔듯이 뾰족한 묘안으로 전세계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해외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이 여행기가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앞으로의 상황이 조금 더 진전되길 바람을 함께 담아 글을 썼다. 비록 우리 일상에서 해외 여행이라는 모험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지만, 열정을 가지고 꿈을 실현했던 많은 여행가들의 이야기 혹은 확신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여행하게 될 모든 이들의 꿈이 이어지길 바란다.


나에겐 이 여행기를 정리하는 일도 여행을 하는 일만큼이나 즐거웠다. 워낙 취업도 어렵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무언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위로 같았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추억을 이 기록을 통해 영원히 수호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사명감을 느꼈다. 어느새 서로의 기억이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며 더 늦기 전에 기록하여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꺼내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 여행기를 쓰면서도 나 스스로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었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그 당시에는 일어났던 것을 재확인하면서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이 형은 우리의 여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20대에 마지막으로 부린 객기였다.” 형은 이 여행을 위해 푸조 308을 한 달이나 빌렸고, 20개가 넘는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한 여름날의 3주간, 대서양을 마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끝도 없는 지평선 속에 포도밭과 지고 뜨는 해를 맞고, 절벽과 동굴을 오르내리다, 피레네 산맥을 넘고, 뜨거운 지중해 태양에 녹아 버릴 뻔했고, 또 프랑스 남부의 색들을 맞이하다, 계곡과 알프스를 건너, 부르고뉴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5,500 km라는 거리를 손수 운전하며 발 아래 액셀러레이터를 혼자 다 밟았다. 그 과정에 상이 형과 내가 함께했다. 우리는 많은 곳을 보고 듣고 느꼈다. 2019년의 서유럽은 어디를 가도 아직 로마 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몇 백 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곳인데, 사람 인생 100년은 평소보다 작게 느껴졌다. 시간과 영토와 국가가 바뀌어도, 삶과 영혼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15일간 서유럽의 서른 도시를 돌면서 정말 많은 경험과 순간들이 있었고, 기쁨, 경외, 충만, 새로움, 부끄러움 등에 다양한 감정들이 스치었다. 그리고 이 속에서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보다 ‘누구와 갔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 하나만은 일단 동의하면서도 이 여행을 마칠 때쯤 몸소 느꼈던 진리였다. 여행 내내 방문했던 모든 도시의 모습 전부를 기억할 수 없지만, 사람을 만났던 도시만은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상이 형이 마중 나왔던 바르셀로나 국제 공항부터, 시체스에서 함께 밤을 지샜던 은이 씨, 바르셀로나 근교 여행부터 게스트 룸까지 빌려주었던 말타와 말타의 어머니, 마르세유에서 마파두부를 사 주셨던 연이 님과 사모님, 니스에서부터 에제와 모나코까지 함께했던 원이 씨와 윤이 씨, 상세르에서 염소치즈를 소개해 준 Y 님, 파리에서 귀한 책을 나눠 주신 김은진 작가님, 파리의 밤을 같이 여행했던 T, 베르사유에서 함께 와인을 마신 S까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 그들이 있고,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그 장소에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순간에 내 옆에는 나의 전우이자, 지금도 종종 내게 영감을 주는 초이 형이 있었다. 형이 있었기에 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여행이 평생 두고 서로의 가장 좋은 술안주가 되길 바란다. 이번 여행에서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Gracias! Mer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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