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실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 성공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국악을 했었다. 연주했던 악기는 장구, 북, 꽹과리 같은 타악기였다. 약 6년간의 활동이었는데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다. 우리 초등학교 국악관현악단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 기여하기도 했고 각종 학교 행사나 매년 정기적으로 열렸던 정기연주회에서도, 심지어 중국까지 날아가 좋은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있었던 국악관현악단에서 활동을 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국악으로 꽤 유명했던 학교였기 때문에 단원이 된 것이 뿌듯하기도 했고 어린 나이었지만 책임감도 갖게 되었다. 약 3년간의 초등학교 국악관현악단 활동에선 많은 것을 이뤄냈었다. 5학년 때는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6학년 때는 대구시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수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상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뿌듯한 일들이 많기도 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을 발견해주신 국악 선생님들도 만났고 우리 학교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 소속의 선생님들께도 칭찬을 많이 받기도 했다. 국악을 전공으로 하는 것을 권유 받기도 했다.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의 우수한 입상, 그리고 주변에서의 칭찬들과 전공 권유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내가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국악을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내가 살던 지역에 있었던 청소년 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 관현악단에서는 대회를 나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여러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러 가기도 했고 중국의 한 한국국제학교에서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여러 연주회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국악으로 무대에 서는 것을 나의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다. 부모님께는 선뜻 말씀드리기 어려워 남몰래 나의 마음속에서 국악인을 꿈꾸게 되었다. 나의 재능을 알아봐준 선생님들도 있었기에 열심히 배우면 우리나라 전통 음악을 지키는 좋은 국악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악인이라는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유는 부모님의 반대였다.
예술고등학교를 생각하고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어머니께 국악을 전공으로 하고 싶다고, 국악인이 되고 싶다고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그 뒤, 다시 나의 꿈을 말씀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머니의 반대였다. 여러 번의 어머니의 반대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어머니의 생각에 더 강하게 반대할 생각도 해보기는 했지만 나의 생각에 큰 반대를 하시지 않았던 어머니의 첫 반대였기 때문에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접기로 했다. 지금의 나였으면 더 강하게 밀어붙였겠지만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쉬운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국악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즐겁게 하던 연주도 꿈을 포기하고 나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되었고 그 전에는 즐거운 마음에 느끼지 못했던 고막의 통증도 그 뒤로는 참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관현악단 탈퇴를 결심하게 되었고 모든 포기가 그렇듯 미련만을 남기고 연습실을 떠나게 되었다.
당연히 그 당시의 나는 그 때의 포기가 실패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지 못한 것. 당연히 실패였다. 하지만 많이 성숙해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의 포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크기는 하지만 그 때의 포기가 없었다면 글을 쓰는 나, 커피를 만드는 나도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었다. 포기라는 것을 배웠고 포기를 할 줄 아는 용기를 얻게 되었고 실패이기도 했지만 성공이기도 했던 포기였다.
국악인이라는 꿈을 포기했던 것은 때론 포기도 필요하며 포기가 항상 실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 조그만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