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신 Jan 27. 2021

친구들이 나의 글을 보고 연기를 하다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해준 성공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국어 선생님께서 조를 짜주셨고 각 조별로 짧은 각본을 직접 쓰고 연극을 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우리 조의 조장을 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각본을 쓰는 역할도 맡게 되었다.


 각본이라는 것이 낯설었던 우리는 그 당시 유행하던 주제를 선택해 글을 쓰기로 했다. 그 당시 인터넷에서 미니홈피가 유행했었는데 사람들이 미니홈피를 통해서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 흔히 말하는 썰을 많이 공유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걸 떠올렸고 친구들에게 막장 드라마를 한 번 써보자고 의견을 냈다. 왜 그 의견을 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막장이라고 하면 웃기다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한 번 웃겨보자는 취지였던 것 같다.


 내용은 막장 그 자체였다. 학생들이 학교 안, 그것도 교실 안에서 아주 심하게 싸우다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이야기였는데 그 선생님이 학생들을 혼내기 위해 갑자기 사물함에서 몽둥이를 가지고 오면서 끝나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이상한 글이 나왔는지, 왜 친구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동의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런 웃기면서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를 나름 각본의 형태를 갖추어서 각본을 썼고 칭찬을 기대하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각본을 정말 잘 썼다고 생각했고 자신감이 가득 찬 모습으로 선생님의 칭찬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정반대. 선생님께서는 이런 막장 이야기를 쓰는 것이 숙제였냐고 혼내셨고 우린 시무룩한 모습으로 내가 쓴 각본을 버려야 했다.


 우리는 다시 주제를 찾기 시작했다. 재미는 있지만 막장이 아닌, 중학교 1학년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주제가 아닌, 그리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주목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 했다. 여러 주제를 찾는 중 한 친구가 남북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 남북 관계는 최악이었기 때문에 뉴스에도 자주 나오던 내용이었다. 전혀 가볍지 않은, 아주 좋은 주제였고 각본만 잘 쓰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주제로 연극을 하기로 결정했다. 등장인물과 두 나라의 정상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서도 정한 후 나는 각본을 완성하였다.


 두 정상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야기만 하면 흥미도가 떨어질 것 같아 재미와 긴장감을 위해 정상들이 언성을 높이는 상황과 긴장된 상태에서 각국의 경호원들이 총까지 꺼내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적어보았다. 거기에 친구들의 연기력까지 추가되어 처음에 썼던 이야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연극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 조는 반 친구들의 큰 박수를 받았으며 선생님은 우리의 연극이 아주 재미있고 주제도 좋았다며 극찬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첫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성공하였다. 비록 학교 교실이었지만 아주 성공적인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데뷔 아닌 데뷔였던 것 같다. 연극이 끝난 후의 반 친구들의 박수갈채, 선생님의 극찬, 이 두 가지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내고 나니 당연히 각본, 시나리오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것도 당연히 첫 시나리오 덕분일 것이다. 물론 처음에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로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그 후, 비록 학교 교실이었지만 성공적인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데뷔 아닌 데뷔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시나리오를 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첫 시나리오는 지금의 내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게 해준 조그만 성공이었다.


이전 01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조그만 성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