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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신 Feb 28. 2021

군대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즐겁게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성공

 2017년 10월 24일, 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들은 것도 있고 방송에서 본 것도 있어 군대에 대한 약간의 팁 같은 것을 어느 정도 가지고 들어갔지만 몸도 남들보다는 좀 약했던 나였고 어딘가에 적응을 하는데 시간이 남들보다 많이 필요했던 나였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었다. 특히 걱정을 했던 때는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였다. 무서운 선임들도 있었고 군대라는 곳의 분위기 자체가 딱딱하고 무거운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맞는 보직이 맡게 되었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적응도 빠르게 하고 전역 때까지 즐겁게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즐거운 군 생활을 선물해준 보직은 바로 ‘운전 조교’였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훈련소 교관들과 조교들이었다. 훈련병들을 카리스마 있게 통제하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잠깐 훈련소 조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신체적 조건을 보더라도 조교가 되는 것은 힘든 조건이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내가 운전병으로 입대를 했던 것이었다. 조교 선발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훈련소 수료 후 훈련소를 떠나 다른 곳에서 후반기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던 나였기에 훈련소 조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조교라는 꿈은 잠시 접고 훈련소를 수료했고 후반기 운전 교육을 위해 수송교육대에 입소했다.


 그런데 수송교육대에도 조교가 있다는 사실을 입소를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교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조교가 있을 텐데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나를 가르치던 조교들에게서 나의 기수에서 운전 조교 3명을 뽑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기회였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조교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다. 사실 부대가 집과 가까운 것도 나의 선택에 한 몫 했었다. 부대에서 출타 때 근처의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는데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이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편도로 1,250원이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과 가까운 부대, 나의 적성에 딱 맞는 보직. 이 두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교관과 조교들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교육을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결국 조교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굉장히 긴장된 상태로 면접을 본 기억이 난다. 면접이라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군대라는 곳에서는 긴장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나는 차근차근, 그리고 자신감 있게 장점, 재능, 그리고 경험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어필했다. 운전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누군가에게 과외를 했던 경험, 그리고 교육 때 있을 수 있는 돌발 상황에 침착하게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감 있게 면접관이었던 간부들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자신감 있는 모습을 좋게 보았는지 나는 그렇게 면접까지 통과해 교육대를 떠나지 않고 교육생이 아닌 병사로 교육대에 남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교육대를 자대로 배치를 받고 조교들이 생활하는 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조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또 교육을 받아야 했고 시험도 쳐야 했으며 면접도 봐야했다. 교육생 때 보았던 운전 기능 시험과 도로 주행 시험은 물론이고 운전법, 운전 코스 등 교육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설명하는 시험도 있었다. 교육생 때 나를 가르치던 조교들이 나의 선임이 되었는데 그 선임들이 다시 나를 조교로 만들기 위해 나를 가르치게 되었다. 선임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 선임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운전뿐만 아니라 교육생들에게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방법,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 방법 등 운전병으로서 알아야하는 것과 운전 조교로서 알아야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는 훗날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선임이 되어 후임을 가르쳐 줄 때 잘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되었다.


 그런 선임들의 교육 덕분에 교육도 잘 받고 시험도 잘 쳤으며 면접도 잘 보았다. 그리고 몇 주간의 노력 끝에 그렇게 나는 머리에는 ‘조교’라는 글자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쓰게 되었고 어깨에는 조교의 상징인 체인을 달게 되었고 가슴에는 ‘조교’라고 적힌 패찰을 달게 되었다. 훈련소 조교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보직인 운전병을 양성하는 운전 조교가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뜻 깊었다. 조교가 되자마자 나는 선임들과 함께 운전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역 때까지 많은 교육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선임이 되어서는 교육생들뿐만 아니라 후임들을 조교로 만들기 위해 가르치기도 했다.


 17개월 동안의 조교 생활은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교육생의 운전 미숙으로 가드레일에 박기 직전까지도 갔으며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사고가 날 뻔도 했다. 일부 문제가 있는 교육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운전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나에게 항상 즐거움을 주었고 그런 스트레스는 다른 교육을 통해서 금세 잊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7월 1일, 나는 길었던 군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운전 조교라는 보직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위병소를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군대에 있을 때를 생각하기도 한다. 안 좋은 기억도 있지만 즐겁고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아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렇게 즐겁게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맞는 보직을 맞아 최선을 다해 군 생활을 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군대에서 운전 조교가 되어 많은 교육생들을 가르친 경험은 즐겁게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조그만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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