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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신 Feb 28. 2021

악역이 되었다

배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성공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바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보기’이다. 드라마 PD를 꿈꾸었던 과거에도, 드라마 작가를 꿈꾸고 있는 지금도 이 버킷리스트는 변함없이 나의 노트에 적혀있다. 직접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해보면 배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이해는 드라마를 연출할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좋은 자산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연기는 해보았다. 초등학생 때 예술제에서 연극을 해본 적이 있었고 중학생 때에도 반 친구들 앞에서 연극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는 짧은 대사와 함께 연기를 한 시간이 2분도 안 되었었고 중학생 때에는 연극 자체가 길지 않아 긴 연기를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 카메라가 없었던 점이었다. 드라마 PD, 작가를 꿈꾸고 나서부터는 카메라라는 중요한 장치 앞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꿈을 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단편 드라마의 주연이 되어 연기를 한 것이다. 악역, 나의 첫 역할이었다.


 대학교를 자율전공으로 입학한 나는 2학년 때 신문방송학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PD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목표로 했던 학과였다. 2학년이기는 했지만 과를 옮겼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신입생처럼 학교를 다녔었다. 그러던 중 과에서 학술위원회라는 활동을 소개해주었다. 신문방송학과라는 과에 맞게 영상분과, 광고분과, 사진분과, 신문분과 등 여러 활동이 존재했었다. 나는 과에 적응도 하고 나의 꿈에 맞는 활동도 할 겸, 영상분과에 참여하기로 했다. 영상을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PD를 꿈꿨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 참여한 회의. 나와 같은 2학년들도 있었고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학년들도 있었다. 활동은 2개의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우리 조는 나를 포함해 2학년 2명, 1학년 5명으로 구성되었다. 우린 여러 가지 영상 종류 중 단편드라마를 선택했다.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연기도 직접 하고 카메라로 직접 촬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러 장르 중 스릴러를 택했다. 드라마의 키워드는 바로 ‘스토킹’이었다. 우리가 쓰고 연기하고 촬영한 드라마의 줄거리는 이러했다.


 ‘같은 과에서 CC였던 남자와 여자.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이유는 남자의 지나친 집착. 남자는 여자가 하는 모든 행동, 활동에 간섭을 하며 집착을 했다. 여자가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도,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계속해서 문자와 전화를 하는 남자. 이에 지친 여자는 결국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남자는 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 몰래 여자를 계속 스토킹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를 계속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같은 과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남자의 스토킹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밤늦게 계속 여자에게 전화를 하고 심지어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 여자를 기다린다. 여자는 이에 큰 두려움을 느껴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갑자기 없어져버린 여자의 소식을 알기 위해 남자는 학과 친구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물어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남자에게 여자의 근황과 지내고 있는 그녀의 고향을 알려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남자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당한다면 굉장히 무섭고 섬뜩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내용을 정리한 뒤 역할을 정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당연히 스토킹을 하는 남자와 스토킹을 당하는 여자였다. 이 둘의 비중이 드라마의 90% 이상이었다. 줄거리만 보더라도 남자는 임팩트가 굉장히 큰 역할이었다. 몇 번의 토의 끝에 나는 이 역할을 맡게 되었고 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나리오도 순조롭게 잘 완성되었고 카페, 식당, 학과 독서실 등 촬영에 필요한 장소 섭외도 잘 되었다. 문제는 연기였다.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고 스토커라는 악인 역할이 자체가 나에게는 부담이 되는 역할이기도 했다. 그래서 NG도 많이 났다. 나는 이런 나의 실수들을 줄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자주 즐겨보았는데 촬영을 하는 기간에는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드라마를 보기도 했고 중저음인 나의 목소리를 스토커라는 역할에 잘 어울리게 활용하기 위해 대본을 읽으면서 연습하기도 했다.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봐줄 만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열심히 연기를 했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결코 짧거나 가벼운 연기는 아니었다. 나의 역할로 드라마의 분위기가 어둡게 잘 이어져갔고 드라마의 대부분이 나의 연기로 채워져 있었다. 큰 역할이었다.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연기를 한 것은 내가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 이렇게 길지 않은 연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연출가로서, 작가로서 배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큰 경험이자 성공이었다.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던 경험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배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조그만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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