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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Sep 06. 2022

더럽고도 깨끗한 사람

어제 사람 구경 하고 오늘 쓰는 전 날 일기 (2)

퇴근할 때 지하철은 늘 만원이다. 사람들 사이에 콩나물처럼 낑겨가는 게  다반사다. 어제 내 옆엔 어떤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사람에 치여 몸이 밀리는 걸 막으려 지하철 문에 한 손을 짚은 채였다. 첫째~넷째 손가락의 손톱은 다 1mm 미만으로 바짝 깎여 있었는데, 다섯 째 손가락만 손톱이 길었다. 어림잡아 4~5mm는 돼 보였다.


깎는 걸 까먹은 걸까. 아님 기르는 이유가 있을까. 인터넷에 검색하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걸 궁금해하고 있었다. 귀나 코를 파기 편하다더라, 비닐을 잡아뜯을 때 용이하다더라, 이에 뭐 끼었을 때 빼기 쉽다더라…. 추측은 다양했다. 대부분 실용적인 이유였고, 그중에서도 '위생'과 관련된 게 많았다.


이것도 생활의 지혜라면 지혜지. 이에 뭐가 끼었는데 이쑤시개도, 칫솔도 없어 곤란했던 경험은 나도 있다. 귀에서 뭐가 부스럭 거리는데 손 끝이 뭉뚝한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지. 비닐이 꽁꽁 묶여있을 땐 나도 날카로운 것부터 찾는다. 쿡 찔러서 구멍낸 후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양옆으로 뜯으려고. 새끼 손톱 하나 기르는 걸로 골칫거리가 세 가지나 해결된다면, 기르는 게 이득이진 않을까...? 


네일아트 한 손톱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긴 손톱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도 새끼손톱 기르는 게 비위생적이란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손톱이 길면 세균이 드글거린다는 이유가 첫번째였는데, 그건 네일아트 하려고 기른 손톱도 매한가지지 않나. 남이 손톱으로 코 막고 귀 파는 게 상상돼서 싫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기른 새끼손톱은 새하얬다. 때 하나 끼어있지 않았고, 손톱 외에도 곳곳이 잘 관리된 게 보였다. 머리숱은 적었지만 가르마가 단정했고, 와이셔츠 목깃도 빳빳했다.

 

위생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원래 더럽다. 하루만 세수 안 해도 얼굴이 기름지고, 점심 먹고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이가 누레진다. 손톱으로 코 파서 콧구멍 깨끗한 사람과 아무 짓도 안 해서 안 깨끗한 사람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난 전자가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다들 코 파본 적은 한번 쯤 있지 않나?


물론 세수할 때 코 풀어서 콧구멍이 깨끗한 사람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깨끗해지는 과정이 다소 더럽게 느껴진대서 그 사람이 더럽다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칫솔로 혀 깊은 곳을 닦을 때도 고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손톱 기르는 사람이라 긴 손톱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난 손톱 길면 타자치기 불편해서 바 깎는 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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