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근처엔 대형할인마트가 하나 있다.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개인이 하는 거다. 인도에 붙어 있는 시멘트길을 6m 가량 걸어들어가 출입구에 이르기까지, 양 옆으로 6개씩 묶인 1.25L 생수와 쌀포대 같은 것들이 맨바닥에 더미를 이루고 있다. 생수 옆엔 할아버지 하나가 앉아 있다. 마트에서 나오는 상자를 납작하게 펴서 쌓아둔 뒤, 높이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노끈으로 묶는 일을 한다.
비 온 다음날이면 시멘트바닥 위에 흙탕물이 고여 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맨바닥에 앉아서 상자를 핀다. 자세히 보면 가부좌를 틀고 있다. 무릎 관절에 해로운 자세인데 불편한 기색도 없다. 햇볕에 오래 타서 갈색이 된 얼굴은 무표정하고, 이마는 사포질 오래 한 나무 책상처럼 반지르르하다. 거기 앉아 오래 일하며 거친 손으로 땀을 훔쳐내다가 닳아버린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마트에 들르는데 할아버지 자세가 흐트러진 걸 본 적이 없다. 상자 펴는 행동만 규칙적으로 반복할 뿐이지만 늘 허리가 곧다. 아직 초짜인 내가 취재원 인터뷰를 따려 전화기 너머서 굽신거리는 거랑은 다르다. 그는 무릎이든 어깨든 앙상해서 각이 졌다. 곁눈질로 보면등신불 속에서 미라가 된 승려같다. 상자를 피고 있지만 실은 도 닦는 것처럼 보인다.
내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왜 하필이면 '일'일까. 인턴 기간까지 합치면 일하기 시작한지 만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 짓(출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라는 위기감이 든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아빠는 "나중 되면 머리가 거부해도 몸이 절로 회사에 간다"고 했다. 난 그런 경지에 이르러면 한참 멀었다. 대학 때 알고 지내던 동아리 친구들도 이젠 다 회사원이 됐다. 다같이 배스킨라빈스에 모여 '엄마는 외계인'을 퍼먹던 날, "부모님은 어떻게 한 직장을 20년 넘게 다녔지?" 라며 모두 궁금해했다.
어떤 일은 쉬지 않고 오래 해왔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직업이 뭐든지 간에 매일 '출근'한다는 게 꼭 그런 일 같다. 로또 당첨의 꿈은 아득하고, 출근은 당장 내일 아침이지. 그러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일단은 출근해야지. 어떤 것이든 간에, 오랫동안 열심히 한 일엔 나름대로의 격이 생긴다. 그 할아버지나 우리 엄마아빠처럼, 나 역시 그럴 거라고 '일단은'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