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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Jun 10. 2024

닭가슴살의 평화로움

<말들의 거리>

내 이상형은 치킨에서 닭가슴살부터 건져 나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전전남자친구와 연애 초반에 치킨을 나눠 먹은 것이 그 유래다. 우리는 둘 다 순살을 선호하는데 그땐 실수로 뼈 있는 치킨을 주문했다. 그는 자기 접시에 덜어간 부위가 닭가슴살인 걸 보고 내 접시에 넘겨준 두 번째 남자다. 첫 번째는 우리 아빠다.


나는 닭가슴살이 좋다. 맛과 모양에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살이 결대로 고르게 찢어지는 것도, 온통 흰색인 것도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날개나 다리는 힘줄, 연골, 회색 끼가 도는 살점 같은 게 섞여 군데군데 맛이 다르다. 치킨을 베어 물면 내 입에 어떤 것들이 들어올지 예측이 안 된다. 반대로 닭가슴살은 담백하고 어느 곳을 씹든 맛이 일정하다.


어릴적 나는 닭에서와 비슷한 이유로 삼겹살 앞에서 곤란해했다. 삼겹살은 껍데기와 비계와 물렁뼈로 완성되는 부위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외식해도 삼겹살이나 수육 대신 갈비를 먹으러 갔다. 집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날엔 부모님이 비계가 적은 목살을 사오셨다. 어쩌다가 삼겹살을 먹게 되면 최대한 살점이 많은 걸 골라내 접시에 덜어주셨다. 껍데기나 큰 비계는 아빠가 가위로 다 잘라낸 채였다.


사회생활을 할 땐 그런 특권을 바랄 수 없다. 참고 먹어야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비계와 물렁뼈를 억지로 먹은 최초의 경험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1박 2일로 현장체험학습 비슷한 걸 갔는데, 같은 조 애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해 먹어야 했다. 우리 팀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웠다. 야외에서 캠핑하는 상황이라 앉아서 편하게 먹을 만한 책상이 없었다. 종이 접시에 분배한 삼겹살을 서서 먹어야 했는데, 나무젓가락으로 비계나 뼈를 떼고 있으면 꼴사나울 것 같았다. 실은 몇 번 시도해봤는데 젓가락 끝이 뭉뚝해 잘 떼어지지도 않았다. 꾹 참고 그냥 먹었다.


자라면서, 별난 애로 보이기 싫다는 사회적 본능과 귀찮음이 취향보다 커졌다. 대학교 입학할 때쯤 나는 삼겹살을 그냥 먹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게 됐다. 껍데기를 떼는 것으로 충분했고, 충분히 바삭하게 익은 껍데기라면 그냥 먹기도 했다. 치킨에 대해서도 조금은 타협하게 됐다. 어차피 단체로 치킨을 시켜먹을 땐 뼈를 처리하기 귀찮아서 순살을 주문하게 된다. 나로선 그것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순살 치킨은 힘줄이나 연골이 없으니까. 치킨을 주문하면 떡볶이가 같이 오는 치킨집이 많아진 것도 내겐 호재였다. 치킨을 먹었는데 살점이 미끈거리고 영 맛이 별로라면 떡볶이만 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같이 뭘 먹는 자리에서 배를 든든히 채울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내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닭가슴살이다. 닭다리살을 순살에 섞어 쓰는 치킨집이 늘어나는 시대. 닭가슴살 순살치킨을 판매하는 bhc는 내 유일한 안식처다. 세상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 당장 동네 피부과를 갈 때만 해도 일반의가 하는 의원인데 피부과인 척하는 것인지 피부과 전문의가 개원한 진짜 피부과인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부과’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진료과목’이란 말이 적혀 있지 않은지 눈을 부라리며 간판을 살펴야 한다. 의원 블로그에 피부과라고 적어놨는데, 의사 약력이 따로 안 나와 있어서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곳도 있다. 세상이 이런데 치킨을 먹을 때조차 힘줄이나 연골이나 회색 살점이나 기름기가 많아 맛이 이상한 부분을 골라내느라 골머리 앓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길가다가 이 미용실 간판을 보고 닭가슴살이 생각났다. 렌즈 빼서 시력이 마이너스인 채로 봐도, 물구나무서서 봐도 속임수 없는 ‘머리’. 요즘 보기 드문 담백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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