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아빠 회사에서 제공한 주택에 살았다. 지역명에 ‘시’가 붙어있었지만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 문이 어깨너비만큼 열려 있을 때면, 오며 가며 안을 흘깃 들여다보곤 했다. 쇠와 불과 분진으로 된 그 공간이 조금 무서웠다. 한 번은 공사하느라 대장간과 우리 집 마당을 가르는 담장이 허물렸다. 보호막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엄마는 쇠 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했다. 괄괄하게 소리 지르며 놀았던 시절이라 소음에 내성이 있었는지, 난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소리가 기억에 안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대장간 옆에 몇 년간 살았지만, 그 공간은 늘 신기했다. 옆집 대장장이 아저씨를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 얼굴을 본 대장장이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속 헤파이스토스였다. 그래서 어릴 적 내게 대장장이는 ‘옛날 신화 속에 나오는 직업’이었다. 누군가 대장장이 업을 하고 있다는 게 내겐 동굴벽화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때 중요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직업.
나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그 지역에서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 아빠 근무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새로 자리잡은 곳은 광역시에 있는 낡은 아파트였다. 담장 대신 짧은 복도가, 대장간 대신 이웃집이 생겼다. 쇠 치는 소리 말고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가까이서 났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에도 세 번 더 이사해서 지금의 집에 왔다.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전집은 그 모든 이사를 우리와 함께 거쳤다. 나는 세 번째 이사를 했을 때부터 그 책을 펼쳐보지 않았다. 집 근처에 대장간이 있었다는 기억에도 먼지가 앉았다. 그곳 뒷마당에 기르던 토끼나 병아리가 먼저 생각났다.
대장간은 내게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어느 날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영주 대장간이 꽤 유명해졌다고 했다. 20여 년 전 그 대장간 이름이 영주 대장간인 걸 비로소 알았다. 구글에 검색하니 영주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아마존에서 잘 팔린다는 기사가 주르륵 나왔다. 대장장이 아저씨는 어느새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으로 그의 얼굴을 처음 봤다. 대장간 건물 안에서 깡깡 소리를 만들어내던 이가 이 사람이구나 싶었다.
우리 동네엔 미싱·오바사·시다라고 적힌 간판이 두 개나 있다. 지금껏 여러 동네에서 살았지만, 이런 간판은 이번 동네에서 처음 본다. 미싱·오바사·시다는 내게 대장장이 같은 직업이다. 나는 이 이름을 전태일 위인전에서 처음 봤다. 그래서 간판을 봤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버려진 간판이네’ 했다. 쓸모를 다했으나 아무도 치우지 않은 간판과 현수막이 도시엔 많으니까. 아직도 쓰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늦게 찾아왔다. 미싱과 시다는 아는데 오바사는 뭘까 궁금해 구글에 검색하니, 온라인 구인 공고가 여럿 있었다.
그들의 직업에 관해 취재한 기사도 꽤 있었다. 평소에 노동 관련 기사를 잘 안 읽은 나만 몰랐던 세계다. 천이 공장에서 기계와 살 몇 번 부대끼고 나면 옷이 짠 생기는 것으로만 여겼다. 옷 상표와 담장에 가렸을 뿐 세상엔 그런 장인이 참 많다.보이지 않는 손길을 늘 유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