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구두가 뒤바뀐 적 있었다. 검은색 인조가죽에 흰색 큐빅이 달린 구두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학원에 나랑 똑같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애가 있었다. 내 구두가 좀 더 새것이었다고 기억한다.
피아노 학원 입구 한쪽에는 벽면을 다 차지하는 크기의 신발장이 있었다. 당연히 거기 신발을 넣고 다니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현관에는 늘 애들이 벗어놓은 운동화, 샌들, 구두가 한 무더기였다. 자기 신발을 신으러 가려면 남의 신발을 징검다리처럼 밟아야 할 때도 있었다. 신발끼리 섞이기도 했다.
내가 구두를 신고 온 날 그 애도 구두를 신고 온 모양이었다.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구두를 신었는데, 발에 감기는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내 신발이 아니라기엔 학원에 신고 왔던 모습 그대로고. 그때만 해도 나와 똑같은 구두를 신는 애가 학원에 있는 줄 몰랐으니 기분 탓인 줄 알고 집에 갔다.
엄마가 구두를 보더니 “네 건 어디 두고 낡은 걸 신고 왔냐”고 말했다. 어른의 눈에는 그게 바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 고작 6~7살이었고, 구두에 없던 주름이 갑자기 생긴 걸 알아차리기에는 정신 팔릴 게 인생에 너무 많았다. 주택에 살면서 (아빠가) 뒷마당에 토끼와 병아리와 닭과 칠면조와 오리와 개를 기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학원에 똑같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애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엄마가 그랬다. 걔가 내 구두를 자기 거로 착각해 신고 갔을 거라고. 엄마의 말은 다 맞았고 범인은 나와 친하지 않은 애였다. 한날한시에 운동화를 신고 학원에 와서 구두를 맞바꾸기로 약속했다. 엄마는 빳빳한 종이가방에 구두를 넣어줬다. 그 애는 손잡이 없는 비닐봉지에 구두를 넣어왔는데, 나는 어련히 알아서 잘 줬겠지 싶어서 봉지나 구두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집에 가져갔다.
엄마가 구두 담은 봉지를 보더니 “나는 종이가방에 잘 담아줬는데, 이 집은 왜 고기 담았던 봉지에 구두를 넣어 보내냐”고 그랬다. 말을 듣고 보니 구두 담은 봉지에 정육점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보통의 가정집이면 다른 봉지가 있을 텐데, 내 새끼 구두를 하필 고기 봉지에 넣어 보낸 게 엄마는 기분 나쁘댔다. 나는 남의 구두에 차려야 할 격식 같은 건 잘 몰랐고, 고기 봉지를 싫어하기엔 사람 발도 따지고 보면 고기이지 않나 싶었다. 그땐 엄마가 기분 나빠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일 년에 일주일도 구두를 신지 않는 어른으로 컸다. 고기 봉지에 담겨 왔던 구두가, 태어난 이래로 내가 가장 자주 신은 구두가 될 줄은 몰랐다. 여느 때처럼 운동화를 신고 동네를 걸어 다니다가 횟집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붙은 ‘포기 김치 판매’를 봤다. 국내산인데다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고향의 옛맛!’
살다 보면, 점심때 약을 안 먹었다는 걸 깨닫듯 과거가 불쑥 이해되는 순간이 생긴다. 옆에 있는 전봇대가 만원(滿員)이라면 음식물쓰레기통 근처에 붙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왜 굳이 그랬나 싶은 거다. ‘위생점검 철저’한 김치라면서 왜 하필 여기었어야 하느냐는. 더 깔끔해 보이는 곳이 분명 있을 텐데. 구두 넣은 고기 봉지를 받아든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