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사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특히 타인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사람을 싫어한다. 길목을 막고 전단지 배포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 그중 하나다.
전에 살던 동네에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아침 출근 시간대마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입구 앞에 서서,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들이밀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역으로 뛰어가는 일이 잦았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 내려가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했다. 아주머니가 입구 앞에서 전단지를 받아가라고 거의 강권하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 길목을 막고서 전단지를 떠미는 것은, 정해진 시간까지 회사에 가야 하는 상황에선 협박 비슷한 거였다. 아침부터 자유의지를 침해받는 것 같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괜찮습니다” 하고 거절할 전단지도, ‘아 빨리 가야 하는데’ 하고 받게 됐다. 괜찮다고 예의바르게 거절하는 것보다 싸가지 없이 잡아채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날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또 전단지를 들이밀길래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내밀었다. 이 필라테스 학원 전단지만 벌써 몇 장 째인지. 며칠 전에 받았던 똑같은 전단지가 반으로 접힌 채 내 코트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그녀는 내게 전단지 내민 손을 거둬들였다.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대신 내밀었다. 난 여느 때처럼 전단지를 받으려고 내밀었던 손을 머쓱하게 움츠렸다. 시간 없는데도 기껏 그쪽 입장 생각해서 받아주려 했는데, 막상 안 주니 짜증이 치밀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전단지를 일체 받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은 따로 하지 않고, 인상을 있는 힘껏 구긴 채 아주머니를 지나쳤다. 내 배꼽 앞으로 전단지를 내미는 손은 흘깃 보고 무시했다.
그러다 겨울이 됐다. 사람들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내밀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다가 체온을 잃을 것을 감수하고 전단지를 받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가다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입구에서 손을 미리 뺐다. 아주머니가 내 앞에 황급히 전단지를 내밀었다. 전단지를 내려다보며 내가 습관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가 “미안해요” 했다. 나는 전단지를 잡아채고 에스컬레이터를 쿵쿵쿵 뛰어내려갔다.
이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 아주머니를 더 만날 일은 없다. 나는 여전히 길목에서 뿌리는 전단지를 잘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말 없이 전단지를 지나칠 때마다 “미안해요”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한 번만 받아 달라는 듯 비굴했던 표정도. 그럼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먹고 살기 위해 끼치는 민폐는 어디까지 용인돼야 하는지, 내 자유의지는 정말 침해되어선 안 될 정도로 가치있는 것인지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된다. 아직 답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