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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May 08. 2024

기억을 묻을 곳

<말들의 거리>

우린 2020년 6월에 처음 만나 2023년 9월에 아주 멀어졌다. 그를 생각하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라 헤어진 후에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가 자주 입는 자켓, 티셔츠, 바지를 똑같이 입은 사람을 지하철역에서 마주쳤을 땐 우리가 정말 만나버린 줄 알고 딸꾹질을 했다. 길에서 고개 숙이고 핸드폰 보는 사람의 알밤같은 뒤통수. 에스컬레이터에서 속이 쓰리다며 배를 부여잡은 사람의 안경과 관자놀이. 비슷한 기울기의 거북목들.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다 스친 여자에게 나는 그의 섬유유연제 향. 몸과 마음의 덩어리로는 내 곁에 없는 그가 냄새와 장면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는 그렇게 내 세계 어디든 도사리고 있었다.


이 마음이 어디 무인도서 혼자 굶어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추억들로 해변가에 SOS를 적어도 못 본 척 아이스크림이나 빨아 먹고 싶었다. 그게 안 돼서 유배를 떠난 건 나다. 평일엔 다음날 출근 때문에 기차를 탈 수 없고, 드라이브하려니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의 유배란 뻔하다. 그냥 평소보다 어디로든 더 가는 일이다. 가끔은 획기적인 유배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한강과 거기서 갈라져 나온 작은 강들의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 향한다. 몇십분씩 타다 보면 내 세상엔 물비린내와 날파리 군집과 나만 남는다. 그 순간 만큼은 그가 내게 영영 필요없을 것 같아진다.


그 무력하고 고요한 순간이 예전에도 있었다. 그는 “바쁘다고 했잖아” “힘들다고 했잖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말을 아무리 들어도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 감이 안 잡혔다. 힘들단 사람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순 없어서 “그렇구나”로 일관하곤 했다. 헤어진 건 “그래서 너는 언제 행복해져?”라고 되묻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내게 물자체(物自體) 같은 사람이었다. 땀에 젖은 등, 웃으면 드러나는 깨진 송곳니, 구레나룻 근처에 외따로 난 수염 같은 것을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그게 그의 팔 할일지도 몰랐다. 감각 너머 그는 알 수 없고 막막한 것으로서 한없이 뒤로 물러난다. 멀어진 게 아니라 원래 멀리 있던 대상처럼.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도 설명이 안 되는 사람. 헤어진 후에 ‘그’를 그리워한 적 없다. 내가 떠올리고 슬퍼한 것들 모두 그에 관한 감각이었다. 이미 느꼈거나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에 느끼게 될. 이를테면 나이들고,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함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질 그의 체취 같은 것. 좀 더 생각이 복잡해지는 날이면 그 감각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사건으로도 넘어갔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털 빠지고 주름지며 같이 늙어갈 것이다. 갱년기를 맞이한 그가 더 감성적이어지고 내가 나이에 꺾여 누그러지면 우리는 더 잘 맞을 것이다. 내 상상 속에서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된 그가 남긴 여지를 오래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기억 닳았다.


자전거를 타다 멈춰 선 곳에서 이 묘비를 봤다. 지나가는 차는 많지만 두 발로 걸어오는 사람은 드문 곳 풀숲. 나는 이런 곳에서 내 마음을 장례 치르고 싶었다. 내가 더 알길 포기한 미지를 이 묘비 아래에 묻는다. 이랬다면 우리가 함께일지 모른다는 가정도, 거기서 파생된 세계들도 단단히 눌러밟힌 자리. 가능성을 빼앗기고 나서야 평화로워진 묫자리에 홀로 남는다. 숨진 기억을 뒤로한 채 다시 자전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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