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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Oct 27. 2024

세계와 세계와 세계의 광화문

현수막: 조선일보를 없애야 나라가 산다!

평일 오전 9시경. 광화문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출구로 오르는 계단에 검은 머리 물결이 인다.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역내가 빼곡한 가운데, 옆구리에 ‘조선일보 폐간’이라 적힌 피켓을 끼고 계단을 오르는 노인이 있다. 그의 반팔 셔츠는 빛이 바랬고 피켓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다. 나뿐 아니라 그도 주기적으로 광화문 출근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다.

나는 그의 일터를 안다. 그의 뒤를 밟아 천천히 걷는 걸음이 내 출근길의 절반이다. 그는 서울 도심 투어 버스가 서는 정류장 앞에 멈춰 서서, 밤새 거리에 방치돼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그 상태로 행인들 보란 듯이 ‘조선일보 폐간’ 피켓을 들고 있는 게 그의 일이다. 더운 날엔 한 손으로 부채질하며, 햇볕이 따가운 날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광화문엔 각자의 전쟁터에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 생존신고를 하러 온다. 사거리 한복판의 섬 같은 인도엔 제 몸의 삼 분의 일은 되는 스피커를 세워두고 옹알이하듯 연설하는 노인이 있다. 발음이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으나, 스피커에 매달아 세운 깃발에 ‘멸공’이라 적힌 걸 보면 공산당을 물리치잔 내용이리라. 이따금 노인이 없는 날엔 ‘화석연료 당장 OUT’ 팻말을 든 중년의 수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 그녀의 얼굴은 말갛고 온화하다. 건너편 이스라엘 대사관 앞엔 모 정치단체가 내건 ‘하마스를 완전히 박멸하라’ 현수막이 펄럭인다. 파라솔 아래 작은 테이블을 세우고 행인에게 서명받는 사람들도 있다. ‘미군 몰아내야 북한과 평화 통일’ 포스터가 테이블 면마다 붙어 있다.

광화문에선 세계와 세계가 충돌한다. 공산당이란 단어는 역사책에서나 봤고, 조선일보 자회사의 사원증을 목에 걸었으며, 하마스는 영 먼 곳의 존재 취급하고, 주유소에서 30년째 일하는 아빠를 둔 내가 그들의 세계를 온몸으로 밀치고 지나간다. 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심시간에 얻을 찰나의 평화다.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카페에 앉아서, 직장 동료들과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그 평화는 내 세계를 타인의 전쟁터와 구분 짓는 울타리였다. 나는 이 시간을 침범받는 일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시위대가 광화문 일대를 1박 2일간 빼곡히 메운 날. 아침부터 시위대 인파에 밀려 회사에 지각할 뻔했고, 점심때 들른 카페는 삼삼오오 무리지어 떠드는 노조원들로 가득했다. 평소보다 곱절로 시끄럽고 앉을 곳도 없었다. 인근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건 광화문 성골(聖骨)들이 빈 카페를 찾아 난민처럼 떠돌고 있었다. 남의 동네에 전세 냈느냐는 투덜거림도 들렸다.

퇴근길은 시위대가 피운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막 식사하고 나온 노조원들이 이쑤시개 하나씩 입에 물고 작업복 차림으로 거리를 누볐다. 다들 줄담배라도 피웠는지 매캐한 담배 냄새가 광화문역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몰상식하고 교양 없는 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식사하고 나면 입에 이쑤시개를 물고 잘근잘근 씹는 그를 만났다. 대학생일 적 학비를 벌 겸 노가다판을 다니면서 든 습관이랬다. 여기에 믹스커피까지 한 잔 마셔줘야 완벽한 공사판식 입가심이라고.

그는 금속노조의 일원이었다. 낮이면 광화문에서 본 노조원들과 비슷한 복장으로 엘리베이터 안전 점검을 다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고래’나 ‘사랑의 기술’ 같은 책을 읽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도 독서 모임이었다. 그가 최근에 읽었단 책들은 내가 서점에서 표지를 쓰다듬어보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책에 대한 그의 감상을 듣다 보면 내 세계엔 전에 없던 언덕이나 전망대 같은 게 솟아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내 지구를 낯선 고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출퇴근길 발자국은 작아졌고, 사랑 같은 뜬구름은 손에 닿을 듯했다.

우린 언젠가 한집에서 지내보잔 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로 부딪힐 거리가 많았다. 각자 원하는 결혼 시기부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데이트 빈도와 화내고 사과하는 방법, 심지어는 설거지하고 수저통에 숟가락을 꽂는 방향까지. 도무지 서로에 맞춰 닳을 수 없어서 각자 갈 길 가자며 헤어졌다. 그래도 그와 내 세계가 충돌한 경험이 나를 바스러지게만 한 건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철마다 광화문을 찾는다. 나는 이제 카페에서 마주친 노조원들에게서 그를 본다. 코를 묻으면 은은한 향이 나던 그의 작업복처럼, 저들의 칙칙한 점퍼에도 온 가족이 공유하는 섬유유연제 향이 배어 있을지 모른다. 길거리에서 이쑤시개를 씹으며 나누는 얘기엔 내가 엿듣지 못한 자기들끼리의 농담이 있을 것이고. 인파에서 빠져나와 담배 한 개비 피우는 동안, 집에 두고 온 털북숭이 고양이나 읽다 만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릴 수도 있다. 타인은 원래 상상하기 나름이다. 그들 너머의 사연과 인간성이 내가 아는 그의 모습으로 채워져 간다.

그러고 나면, 시위하는 수녀에게서 진상 손님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고요히 버티는 엄마를 보게 된다. 하마스를 박멸하라는 현수막에선, 아득바득 돈 모아 산 신축 아파트의 하자 보수를 요구하며 ‘날도둑 건설사를 규탄한다’ 현수막을 건 아빠의 억척이 보인다. 조선일보 폐간 팻말을 든 노인에게선 아직 보이는 게 없지만, 살다 보면 그에게서 떠올릴 사람 하나쯤 사랑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 전쟁터를 등에 이고 이 길에 나섰을 때, 누군가가 날 보고 영 밉진 않은 사람을 떠올려주길 바라며. 오늘도 세계와 세계가 복작거리는 광화문 거리를 걸어간다. 이 모든 세계를 선사하고 나를 떠난 그의 세계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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