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놀이와 목덜미가 땀으로 축축해지는 여름이었다. 그가 편의점 앞을 지나며 내게 물었다. 넌 어떤 때에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생각해? 고민하다가 ‘그 때문에 내가 슬퍼지곤 할 때’라고 대답했다. 맞잡은 손에 아마도 그의 것일 땀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 때문에 슬플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약속장소에 30분 늦었을 때도 ‘유튜브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우쭐해져 있었다. 매미들은 앞으도 한참을 지금처럼 울 것이었고. 지구 온난화로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껏 겪어본 가장 길고 더운 여름 속에 살고 있었다. 어떤 일로 헤어질지 상상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여름. 딱히 정 붙이지 못한 친할아버지의 빈소에 상복을 입고 설 일이 있었다. 나는 영정사진 옆에 놓인 옥춘의 맛이 궁금했다. 종일 향 냄새를 맡다 보니 폐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삽으로 뜬 흙을 관 위에 뿌리는데, 관보(棺保)가 하필 플라스틱 천 재질이었고 얼마 전에 본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미세플라스틱이 인간 뇌조직에서 발견됐다는. 관을 덮은 천이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잔디로, 고라니에게로, 멧돼지에게로, 그렇게 복잡한 생태계와 여러 생체 조직들을 거쳐… 그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한 나의 뇌 어딘가로.
잘만 뻗어가던 딴 생각이 헤어지자는 그의 문자를 보고선 멎었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우리 헤어짐이 얼마나 당연하고 사소한 사건인지를 곱씹었다. 버스가 매일 정류장을 떠나는 세상. 장례식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상주의 얼굴이 매번 바뀌는 세상. 새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들이 잇달아 안락사되는 세상. 회사에 제출하려고 주머니에 챙겨둔 영수증이 아무 데도 온데간데 없는 세상. 지하철 열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강가에 푼 치어처럼 쏟아져나가는 세상. 잠시 함께 하는 존재로 가득한 세계라면, 우리가 서로의 앞날을 모르게 된 게 이상하지 않다고.
헤어진 지 일 년 만에 우연히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봤다. 그는 새 연인과 어깨동무하고 있다. 커플링을 맞췄고, 함께 함박눈을 맞았고,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 내가 그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는 그녀와 했다. 저 사람이 웃을 때 눈가가 저렇게 주름졌었나. 그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마음 귀퉁이에 작은 멍이 피어났다. 그 사람 때문에 오래 슬퍼했다. 내가 그의 시행착오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만나는 줄곧 나는 그의 종점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농담에 제대로 웃는 날 같은 건 없었음에도.
그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도 제자리라는 게 있을 것이다. 마주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유튜브를 보던 그의 머리맡 말고, 같이 손잡고 강가를 서성거릴 누군가의 옆자리. 다툰 후에도 침묵하지 않을 누군가의 맞은 편. 무거운 짐을 나눠드는 누군가의 등 뒤. 헤어지자는 그의 말에, 나는 스스로 밟아볼 엄두를 못 냈던 길 위로 내던져졌다. 하루에 한 걸음씩 간신히 발을 옮겨 그에게서 멀어진다. 먼 곳 어딘가에서 내 쪽으로 걸어오던 사람을 만날 때까지. 그 날이 오면 우린 손잡고 강가를 거닐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는 체념이 수면 위에 별빛으로 반짝일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느냐는 질문은 새 사랑이 시작될 즈음 어김없이 제시될 것이다.
나는 이전과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사람 하나가 떠난 자리에는 텁텁하고, 흐릿한 감사(感謝)가 남는다. 말라붙은 먼지 위에 쓴 고맙다는 말 같은. 나는 그 흔적을 사랑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