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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May 18. 202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대학병원

<말들의 거리>

나는 의료·건강을 다루는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어서 의대 교수들과 자주 소통한다. 대학병원에도 종종 방문한다. 의사들은 ‘의료 쇼핑’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몇몇 대학병원은 정말 대형 백화점 같다. 광나는 바닥에 높은 층고, 산뜻한 조명.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람들이 층과 층을 오르내린다. 1층 로비 구석은 근처 장례식장에서 넘어오는 향 냄새가 은은하다. 환자 복지를 위해 실내 정원을 운영하거나,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같이 있던 병원 홍보팀 사원에게 이런 곳에서 일하면 출근할 맛 나겠다고 했다.


입사하고 가장 못마땅한 것은 회사 건물이 인문대 건물 같다는 거였다. 내 회사는 모회사를 두고 있다. 그 모회사의 계열사와 자회사가 특정 구역의 여러 건물 안에 흩어져 자리 잡고 있다. 단과대별로 건물을 달리 쓰는 대학교 캠퍼스와 비슷하다. 우리 회사는 그중 한 건물에 알맹이 사무실을, 다른 건물에 스튜디오 겸 다용도 공간을 두고 있다. 다용도 공간인 만큼 외부 행사에 대관해 주기도 하고, 신규 입사자 교육을 하기도 하고, 인턴기자 면접을 보기도 한다. 나도 거기서 면접을 봤다.


출근 첫날에 나는 회사 입구를 못 찾았다. 네이버 지도에 표시되는 ‘나의 현 위치’를 보며 15분을 헤맸다. 저 개구멍 같은 문밖에 없는 건물에 내 회사가 있을 거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본 다용도실은 비교적 새 건물에 있고, 내부 시설도 깔끔하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언제쯤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지 궁금해지는 인문대 건물 같은 곳에 있다. 옛날에 지어진 것이라 창문은 작고, 창틀은 쇠로 돼 있으며, 바닥은 울퉁불퉁하다. 회사와 친분이 있는 제약회사 사람들은 여길 ‘요새’라고 부른다.


나쁜 회사는 아니다. 모기업이 유명하고, 그래서인지 취재 요청했을 때 성사도 잘 된다. 구내식당 밥맛도 괜찮다. 밥 먹고 주변 산책하기도 좋다. 하지만 그 건물 안에 있으면 묘하게 시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사무실 건물 안에 둔 화분들은 모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앓았다. 이파리가 누레지며 꺾였고, 가장 좋은 햇볕 아래 내놔도 되살아나지 못했다.


우리 건물 안을 가장 쌩쌩하게 누비는 사람은 구두닦이 할아버지다. 긴 나무막대 두 개가 위아래로 평행을 이루는 구두 걸이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다닌다. 다 같은 갈색이나 검은색 같으면서도 묘하게 색이 다른 구두들이 걸이에 있다. 건물 안 사무실들을 싹 돌며 구두를 거둬가고, 어딘가에서 광나게 닦아서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게 일이다. 위에는 면으로 된 카라 티셔츠, 허리엔 벨트, 아래엔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늘어난 무릎 면이 닳아서 유난히 반짝거린다.


팀장님이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그 할아버지가 이곳 구두를 담당했다고 들었다. 한 번인가 다른 구두닦이가 사무실을 돌며 구두를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영역싸움을 하다가 본인 구역을 지켜냈다고 한다. 회사 근처 편의점 맞은편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지도에는 도로만 표시돼있을 정도로 작은 부스다. 겨울이 아니라면 거의 문이 열려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뭔지 모를 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일하다 보니 기자들과 친해졌는지, 기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그 안에 앉아서 무릎에 올려둔 노트북을 열심히 두들기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고, 이젠 높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구두를 잘 신지 않는다. 예전보다 구두 양이 줄었다는 팀장님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니커즈와 컨버스와 샌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다. 이 회사는 그의 단골들이 한 자리 꿰어찬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사무실 안을 걸어 다닌다. 목에 사원증을 걸지 않았고, 지도에도 안 나오는 허름한 작업실이 전부여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니다 보니 당당해진 것인지, 원래부터 당당해서 그렇게 걸어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걸음걸이부터 따라 해보기로 한다.


길을 걷다가 ‘구두대학병원’이라 적힌 구둣방을 보고 그가 떠올랐다. 대학병원의 백 분의 일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자부심의 크기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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