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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Jul 08. 2022

사랑엔 뭔가 구린 데가 있지

똥과 사랑과 말실수

사랑이란 무엇일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와 네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죄다 제각각이라,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사랑인지 규정하기 어렵다. 다만, 사랑이 아니란 건 때로 확실해진다. 똥을 견딜 수 없을 때다.




똥으로 사랑을 경험한 적이 두 번 있다. 그중 첫번째가 막냇동생의 기저귀를 갈던 때다. 막내와 나는 띠동갑이어서 그 애가 갓난쟁이일 때 난 열 셋이었다. 물 잔뜩 먹인 찰흙같은 똥을 싸곤 했는데, 그날은 도무지 물티슈로 감당이 안 되는 양이었다. 궁둥이에 똥 묻은 아기를 어깨에 들쳐 얹고 화장실로 갔다. 맨손으로 똥을 한 줌 긁어 변기에 떨쳐내고, 엉덩이를 깨끗이 씻겨 줬다. 안 더러웠다. 몽고반점이 하트 모양이었다. 이런 게 사랑이니까.


두번째는 그 반대다. 월세를 계약하고 원룸 건물 맨 위층 주인집에 들렀을 때다. 집 안에 들어가니 눈알이 회백색이 다 된 개가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주인 말론 나이들어 죽어간댔다. 개는 몇 번인가 기침하듯 짖었다. 그러더니 배변 패드로 가 똥을 눴다. 나갈 때 그 옆을 지나치는데 개똥냄새가 훅 끼쳤다. 축축하고 따뜻한 악취. 아유 똥눴어~ 어르는 걸 보니 주인은 아랑곳 않는 것 같았다. 난 아녔다.


집주인은 아침마다 개와 산책하는 모양이었다.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개와 함께 들어오는 그를 공동현관에서 마주치곤 했다. 개는 날 볼 때마다 맥아리 없이 짖었다. 주인 집에 간 날 그 여자가 그랬다. 흡연은 금물이고 반려동물은 사절이라고. 이웃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을 못 자겠다며 세입자가 민원 넣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게 이 원룸 규칙이라면 주인집엔 왜 개가 있나 싶었지만 이내 떠올랐다. 아, 주인이 ‘갑’이었지!


그렇다. 원래 주인이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다. 그 주인이란 이가 개 목줄을 제대로 안 매는 사람이라도. 어쩌다 내 방에 들어올 때면 두리번대며 남의 살림살이를 염탐하는 사람이라도. 나 출근한 동안 에어컨 수리하러 들어왔댔으면서, 에어컨에서 멀리 떨어뜨려 둔 건조대 위치는 왜 바뀐 건지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내 방은 3층, 집주인 사는 덴 7층. 그는 원래부터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사람이니까.


좀 얄밉긴 했지만 아주 미워 죽겠는 건 아니었다. 그냥 세입자 중 누가 굳이 굳이 흡연을 해서 집주인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 딱 그 정도만 나 대신 골탕 먹여줬음 했는데.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주인을 마주쳤다. 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체하며 내게 물었다. 몇 호 살죠? 왜 본 적 없는 것 같지…. 새삼스럽게 왜 이러나 싶어 호수를 말해주고 대충 덧붙였다. 저희 아침에 가끔 마주치는데? 개랑 맨날 산책하시잖아요. 요샌 안하긴 하는데. 어, 왜요? 개가 죽어가지고…. 어우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실히 구린 데가 있다. 지나간 사랑을 굳이 언급하게 했단 이유만으로 사과하게 만드니까. 난 사실 별 말 안했지만. 하필이면 그 사람이 무언가 사랑해버려 약해진 탓이지만.




외줄타기 인류애:

17살부터 26살까지 이사를 10번 했다. 기숙사·고시원·셰어하우스를 전전하다 가족 아닌 남과 10년을 부대꼈다. 남은 진절머리 나고 방구석은 우울하다. 아직도 발 하나 헛디디면 ‘아 진짜 싫다’의 늪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인류애는 외줄타기, 사람과 간신히 더불어 사는 법을 쓴다.


이정표: 

    2013년~2015년) 대구외고 기숙사

    2016년)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7년) 학교 후문 H 고시원 

    2018년) 학교 후문 L 고시원

    2019년 상반기) 중앙대 서울캠퍼스 기숙사

    2019년 하반기) 학교 후문 B 고시원

    2020년~2021년 4월) 학교 후문 L 고시원 

    2021년 4월 둘째 주) 일산 S 고시원

    2021년 4월 셋째 주~2022년 1월) 일산 변두리 셰어하우스

    2022년 2월~현재) 서울 중랑구 원룸 (▶현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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